선수로, 아빠로, 인간으로…‘예의’에 죽고 사는 박용택

입력 2016-10-1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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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박용택은 KBO리그에서 ‘젠틀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다. 예의를 중시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인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박용택이 2011년 사랑의 골든글러브상, 2013시즌 페어플레이상(사진)을 거머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스포츠동아DB

6. ‘그라운드의 신사’ LG 박용택

과도한 세리머니 자제 등 경기매너 굿
FA 대박 땐 축하 문자에 일일이 답장
딸 운동회 참가…“아빠로서의 예의죠”
적십자 홍보대사 등 나눔실천도 앞장


야구는 ‘신사의 스포츠’로 불린다. 단체구기종목 중 유일하게 벨트를 하고 뛴다.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을 하면 지탄의 대상이 되고, 규정에는 없지만 어겨서는 안 되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을 때는 내 동료를 보호하기 위한 벤치클리어링도 허용한다. 그만큼 야구는 예의를 중시하는 스포츠다.

예의하면 LG 박용택(37)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야구선수들 중에서도 ‘젠틀맨’으로 통한다. 신사에게 빠질 수 없는 근사한 정장으로 빼어난 옷맵시를 자랑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그라운드 위에서 좋은 경기 매너를 지닌 선수로 손꼽힌다. 결정적 안타를 쳤을 때, 혹은 극적인 홈런을 쳤을 때 감정을 최대한 숨긴다. 특별한 제스처도 없이 시선을 아래로 고정시키고 묵묵히 그라운드를 돈다.

박용택의 경기매너는 이미 전문가들도 인정했다. 그는 2013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페어플레이상은 경기 중 발생하는 판정 시비와 비신사적인 행동을 근절하고, 선수들의 스포츠정신 고취 및 프로야구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2001년부터 제정된 상. 당시 뛰었던 수백 명의 선수 중 가장 매너 좋은 선수에게 돌아가는 상을 그는 이미 한 차례 거머쥐었다.

박용택이 수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야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예의’ 때문이었다. 그는 선후배간의 예의, 그라운드 위에서 상대팀에 대한 예의, 야구선수로서의 예의를 꼭 지켜야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예의다. 야구를 오래 해왔던 이른바 ‘야구쟁이’들은 불문율을 고의로 어긴 건지, 아닌지를 상황을 보고 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은 가능한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승엽이 형도 액션이 거의 없지 않은가. 상대를 자극해서 오해 살 필요는 없다. 또 그렇게 행동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LG 박용택. 스포츠동아DB


그러다보니 스스로 지켜야할 게 참 많다. 일례로 2014년 친정팀과의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마친 날, 정작 스스로는 기쁨을 만끽할 시간이 사실 많지 않았다. 쏟아지는 몇 백통의 축하메시지에 일일이 답하느라 5∼6시간동안 휴대폰만 잡고 있어야했다. “다들 바쁠 텐데도 내 (계약) 소식을 기다렸다가 때맞춰서 축하메시지를 보내준 건데 고마움을 전하는 게 도리 아니겠느냐. 이런 걸 그냥 넘어가질 못 한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진정한 매너남이다.

박용택은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뿐만 아니라 유니폼을 벗은 후에도 신사의 품격을 지키고 있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2011년 골든글러브시상식에서 사랑의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한 뒤 팬들과 연탄배달을 제안했고, 지금까지도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며 “2006년부터는 안타나 도루를 할 때마다 적립금을 쌓아 기금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하고 있고, 적십자 홍보대사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서울대학교 소아과병동에 있는 환아들을 매년 찾아갔던 걸로 기억한다”며 “본인 이름으로, 아내 이름으로, 또 딸 이름으로 계속해서 기부도 한다고 하더라. 딸이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는 마음에서 기부를 시작했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항상 모범이 되는 행동을 많이 하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신사’ 박용택의 진면목은 일상생활에서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난 날은 LG의 정규시즌 잔여경기가 없는 휴식일이었다. 팀 훈련을 위해 구장에 나온 김에 잠깐 시간을 할애해 기자와 마주했는데 얘기가 끝나자마자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인근 학교에서 열리고 있는 딸의 운동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시즌 내내 원정길에 오르느라, 홈경기가 있는 날도 밤늦게까지 야구선수로 사느라 좀처럼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그에게 이날은 모처럼 아빠노릇을 할 수 있는 날. 그는 짐을 챙기면서 한 마디를 건넸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도 아빠로서의 예의잖아요. 늦으면 안돼요.(웃음)”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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