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송구홍 단장이 말하는 한국형 GM의 길

입력 2017-01-2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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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홍 LG 단장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한국형 GM’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 팀에서 선수로 출발해 코치, 운영총괄을 거쳐 단장까지 오른 유일한 인물인 송 단장. 그는 “소통에 답이 있다”고 강조했다. 잠실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KBO리그에 선수 출신 단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두산 김태룡 단장과 SK 민경삼 전 단장이 선수 출신 단장 1세대였다면, 이제는 한화 박종훈 단장, LG 송구홍 단장, 넥센 고형욱 단장, SK 염경엽 단장이 2세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 출신’이 갖는 강점은 분명히 있다. 전문경영인에 비해 현장을 이해하는 폭이 넓다. 일례로 김태룡 단장은 구단 매니저부터 일을 해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단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선수들의 면면을 파악해 해당선수의 성향과 팀 사정에 맞는 계획으로 팀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지만, 야구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김 단장은 사람 경영을 통해 두산이 강팀으로 발돋움하는데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 ‘앎’이 반드시 장점으로 작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자칫 현장과 마찰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구단 입장에서 팀을 위해 한 행동이 감독 입장에서는 ‘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구단의 중심추가 현장에 있으면 ‘감독야구’, 구단에 있으면 ‘프런트야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한국형 GM이 필요한 이유는 한국만이 가진 고유의 정서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제너럴매니저(GM)와 감독의 역할이 철저히 분리돼 있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빌리 빈이 추구한 ‘머니볼’이 미국형의 역할 분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반대로 일본리그는 니혼햄의 성공으로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감독이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 일본과는 또 다르다. 현장과 프런트간 경계선이 모호해 중심을 잡기 어렵다. 송구홍 단장도 “한국 고유의 정서가 있고, 감독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게 굉장히 어렵다”며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게 정답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양쪽 리그 단장들의 장점을 취합한 한국형 제너럴매니저(GM)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LG 송구홍 단장. 잠실|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단장의 역할은 감독이 선수 고민 안 하게 하는 것”

송 단장은 지난해 12월 신임단장으로 선임됐다. 한 팀에서 선수로 시작해 코치, 운영총괄을 거쳐 단장까지 오른 건 송 단장이 최초다. 1990년대 LG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주역이었고,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구슬땀을 흘렸던 지도자였다. 현장 출신이지만 운영팀에서 프런트 공부를 할 기회도 얻으면서 단장으로 승진했다. 각 보직을 경험하면서 얻은 노하우는 송 단장에게 귀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단장이 된 지 이제 한 달이지만 발 빠르게 움직여 결과물을 내고 있다. 첫 작품이 바로 투수 차우찬 영입이었다.

그러나 차우찬이 오면서 송 단장의 고민은 더 가중됐다. 높은 금액을 들여 영입한 FA 선수의 성패가 걱정돼서가 아니다. 송 단장은 “차우찬을 데려왔는데 4강을 가느냐, 못 가느냐는 내 고민거리가 아니다”며 선을 긋고는 “선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게 아니라 한 시즌을 치르면서 생기는 돌발변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7개월 장기레이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만약 차우찬이 안 됐을 때, 임정우가 안 됐을 때, 김지용이 좋지 않을 때, 지난해만큼만 해주면 좋겠지만 채은성이 2년차 징크스를 겪을 때 경우의 수를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게 내 역할이다. 현재 전력을 구상하는 것은 감독의 역할이지만 전력 외를 준비하는 것은 단장의 할 일이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송 단장의 말처럼 단장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바로 인적 구성이다. 신인선수를 지명하는 일부터 육성, 선수 순환을 고려한 군 입대, 트레이드· FA· 2차 드래프트 등을 통한 선수 영입까지 장기계획을 세워 선수단을 운영을 해야 한다. 송 단장은 “경기운영은 감독의 몫이다. 1군의 27명 엔트리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식으로 선발라인업을 짜고, 경기에서 어떤 방법으로 싸울 것인지 단장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며 “대신 감독이 싸울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단장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은 경기에만 집중해도 힘들다. 하지만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팀은 감독이 선수 구성부터 관여하게 된다. 서로의 역할을 잘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을 넘게 되는 것이다. 감독이 선수 고민 안 하게 해주는 게 단장이 할 일이다”고 강조했다.

LG 송구홍 단장. 잠실|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한국형 GM? 소통에 답이 있다”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감독들은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선후배 문화가 존재하는 한국야구의 고유 정서도 있다. 단장이 자신의 의견을 너무 앞세웠다가 자칫 현장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송 단장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함이 있다”며 “그 선을 지키지 못하면 그야말로 프런트가 현장에 ‘간섭’하는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야구단에 있으면서 그런 사례를 많이 봐왔다. 그래도 선수 출신 단장의 장단점이 분명히 있지만 장점 중 하나가 어느 선까지 지켜야하는지 아는 것 아닐까 싶다. 소통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송 단장은 인터뷰 내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형 GM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덕목이 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소통하려는 의지라고 했다. 그는 “양상문 감독님과는 오래 전부터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추구하는 야구관이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혹 의견이 달라도 조율을 할 수 있는 신뢰가 있다”며 “감독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나의 의견을 제시하고, 감독님께 내 의견을 전달하고 거기에 대해서 감독님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물론 토론 과정에서 마찰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팀을 위한 일이라면 내 자존심을 내세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신 진심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비단 양 감독뿐만 아니다. 송 단장은 LG 신문범 사장과 매일 같이 티타임을 하면서 구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소통의 범위는 윗사람들뿐 아니다. 송 단장은 “자신을 모자란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어떤 사람의 의견이든 경청할 준비가 돼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야구단은 단순히 선수들의 인적 구성이 필요한 게 아니라 구단 사무실에도 인재들이 요소요소 배치돼 있어야한다”며 “난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은 내가 지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팀원들이 강해지면 난 실패할 수 있지만 팀은 무너지지 않는다. 어느 한 명 빼놓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구단, 프런트부터 그렇게 바뀌어야 진짜 명문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LG 송구홍 단장. 잠실|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프런트야구 아닌 시스템야구 구축이 목표”

송 단장이 프런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팀을 하나의 시계라고 믿기 때문이다. 작은 톱니바퀴 하나라도 어긋나면 시계는 멈추게 된다. 송 단장은 “경기는 현장에서 감독이나 코칭스태프, 선수들이 하니까 프런트의 분위기는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며 “1990년대 LG가 신바람 야구를 했을 때 구단 사무실부터 활기찼다. 구단 분위기가 좋아지면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직결된다. 선수단과 구단이 함께 한 배를 타고 가는 동반자라는 느낌을 받게 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물론 프런트 강화가 프런트야구를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송 단장은 “시스템야구가 올바른 방향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송구홍이 없어도, 또 다른 누군가가 없어도 잘 운영되는 팀이 명문구단 아닌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누구 한 명이 빠진다고 흔들리는 팀은 미래가 없다. 누가 빠져도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팀을 만들고 싶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한다. 선수들도 내가 선수, 코치 출신이지만 절차 없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현장에서 풀어야할 문제를 구단으로 직접 가져와 상의하거나 그런 일이 없도록 원칙을 세우려고 한다. 합당한 기준도 만들겠다. 결과는 나중에 고민하겠다. 과정을 더 중시하면서 결과는 어떻게 나오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송 단장은 ‘과정’을 잘 만들기 위해 벤치마킹도 서슴지 않겠다고 말했다. 좋은 점이 있다면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이겠다는 얘기다. 송 단장은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건 아니지만 장점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며 “요미우리나 뉴욕 양키스가 왜 명문구단이었다가 무너졌는지 소프트뱅크, 니혼햄이 왜 좋은 구단으로 거듭났는지, 시카고 컵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게 됐는지, 만년 하위권이던 클리블랜드가 성공한 이유는 뭔지 공부하고 있다. 두산도 시스템이 굉장히 잘 구축돼 있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다면 잘 배우겠다”고 말했다.

LG 송구홍 단장. 잠실|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LG 송구홍 단장


▲생년월일=1968년 6월 23일

▲출신교=사당초∼성남중∼선린인터넷고∼건국대

▲프로 경력=LG(1991∼1996년)∼해태(1997∼1998년)∼쌍방울(1999년)∼LG(2000∼2002년)
▲지도자 경력=
LG 코치(2002∼2013년)

▲프런트 경력=LG 운영팀장(2013∼2016년)∼LG 단장(2017년∼)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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