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팀 플레이어’ SK 박정권 “즐길 때 가을야구 열린다”

입력 2017-09-1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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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박정권은 2004년 비룡군단에 합류한 뒤 14년째 한 팀에서만 뛰고 있다. 유독 가을만 되면 괴력을 발휘하는 모습도 한결 같다. 베테랑의 관록으로 SK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 수 있을까. 스포츠동아DB

‘원 팀 플레이어(one team player).’ 프로 세계에서 아득한 환상에 가까운 말이다. 흔치 않은 이 가치를 지켜가려면 실력 이상의 무언가를 그 팀에 남겨야 될 터다. SK도 ‘왕조의 시대’가 저물며 어느덧 역전의 용사들은 손에 꼽을 만큼 줄어들었다.

SK에서만 17년을 뛴 외야수 박재상(35)은 최근 은퇴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SK 캡틴 박정권(36)의 눈길은 각별하다. 박재상이 결단을 내리기까지 보냈을 수많은 번뇌의 시간, 그리고 원 팀 플레이어로서 커리어 마감의 의미 등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4년 SK 유니폼을 입은 이후 올해까지 14시즌. 2009시즌부터 9년째 이어온 100경기 이상 출장 등 여전히 박정권은 건재하다. 그러나 어느덧 박정권 스스로도 ‘아름다운 끝내기’를 생각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끝을 결정하기 전, 아직 팀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

SK 왕조시절 주축선수로 활약한 박정권.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클럽하우스 리더로 산다는 것

박정권의 수식어는 ‘가을정권’이다. 2010년 한국시리즈 MVP, 2009년과 2011년 플레이오프 MVP 등 날씨가 서늘해지면 괴력을 발산했다. 2017시즌에도 7월 타율 0.333, 8월 6홈런·20타점 등 늦여름부터 방망이가 달궈졌다. 그러다 정작 9월 들어 타격이 조정 받고 있지만 초연하려 애쓴다. 2015시즌 뒤 프리에이전트(FA) 잔류 계약(4년 40억원)을 한 무렵부터 개인성적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클럽하우스 리더의 역할이 그것이다.

리더는 팀이 잘 나갈 때보다 어려울 때 바빠진다. 체질적으로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니다 싶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세심함 덕분에 2011년에 이어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주장직을 맡고 있다. 처음 주장을 했을 때는 야구를 잘해야 말발이 서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야구를 못해서 창피해도 티내지 않고, 팀 후배들을 독려할 줄 아는 그릇이 주장의 진짜 자질임을 어렴풋이 안다. 그리고 캡틴은 동료들을 독려하는 위치가 아니라 참고 지켜봐주는 자리임을 깨닫는다.

SK 박정권. 스포츠동아DB



● 즐길 줄 알 때, 가을야구 가는 길이 보이더라

SK는 LG, 넥센과 살얼음 5위 경쟁 중이다. 잔여경기가 LG에 비해 적은 SK는 남은 경기들이 그만큼 절실하다. 숱하게 가을야구를 해본 박정권은 이럴 때일수록 무언가를 하려 하기보단 하지 않고 두는 것이 더 중요함을 체감하고 있다. 이기려고 안 하던 것을 할수록 꼬이는 것이 야구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5강을 향산 선수들의 의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그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 캡틴의 의무다. 박정권은 “선수들이 야구장에서 놀 줄 알 때가 야구를 향한 몰입도가 가장 높을 때”라고 말했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있을 때, 괴롭고 서글픈 마음은 커리어가 쌓여도 여전하다. 그러나 이제는 팀 SK와 자신을 공동운명체처럼 생각할 나이에 와 있기에 인내할 수 있다. 세상일은 모른다지만 박정권은 평생 SK맨의 길을 걷고 있다.

인천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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