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리상자 롱런 비결은 적당한 무관심 덕분? 하하하”

입력 2017-10-1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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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상자의 박승화(왼쪽)과 이세준은 가수생활 20년을 통해 얻은 것으로 “유리상자라는 이름”과 “가수라는 확실한 직업”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유리상자’란 이름에 흠집 내지 않고 살겠다고 했다. 사진제공|제이제이홀릭미디어

■ 20주년 기념앨범 ‘스무살’ 낸 유리상자 이세준&박승화

어느 가수의 20주년이 특별하지 않겠느냐마는, 유리상자(박승화·이세준)의 20주년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현재 가요계에서 찾기 어려운 남성듀오에, 멤버 교체는 물론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는 깨끗한 이미지로 20년간 한결같은 음악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특별하다. 20주년 기념앨범 ‘스무살’을 내고 활동에 나선 이들을 최근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유리상자는 ‘한결같은 20주년’의 비결을 “서로에 대한 적당한 무관심”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무관심’은 “배려와 이해의 의미”라고 부연했다. 팀을 유지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유리상자는 “서로 사생활을 공유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방법이 최선이었던 셈이다.

● 서로 다른 ‘너와 나’가 만나

박승화 이세준, 두 사람은 스타일이 아주 다르다. 박승화가 매사에 느긋하고 태평하다면, 이세준은 꼼꼼히 따져보고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편이다. 이런 스타일을 두고 이세준은 “나는 여유가 없고 조급하다”고 했고, 박승화는 “느긋하고 지나치게 낙천적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각각 평했다. 서로 다른 성질은 섞이기 어려운 법이지만, “적당한 무관심”이 “배려와 이해”라는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이질의 두 성분의 공존이 가능했다.

초기엔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려 그 ‘다름’을 서로 감추고 살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고 활동이 계속되면서 ‘서로 다름’은 ‘이견’을 만들고, 갈등으로 비화될 순간에 놓이기도 했다. 그 즈음 두 사람은 서로 간섭 없는 개인활동을 시작했고, 갈등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욕구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20주년을 맞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심도 더 깊어졌다.

“20주년 앨범 만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랜만에, 참 많이 했다. 데뷔하고 15년간은 주위를 보지 못하고 달려왔다. 지난 5년간 개인활동 하면서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미래의 계획도 고민하게 됐다. 이제 달리기보다 걸어도 보고, 앞만 보지 말고 주변도 보면서 가자고 했다. ‘재미있게 음악하자’는 데뷔 때 모토를 앞으로도 지켜가자는 마음이다.”


● 유리로 만든 상자에 서로의 마음을 담아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94년 포항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이었다. 박승화는 당시 1집을 낸지 얼마 안 된 신인가수였고, 이세준은 포항의 다운타운을 누비던 아마추어 가수였다. 당시 박승화 소속사 관계자가 이세준을 스카우트했고, 박승화 2집 발표기념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시켜 듀엣 무대를 꾸미게 한 것이 팀 결성의 계기가 됐다.

박승화는 “라이오넬 리치 ‘헬로’를 누가 참 잘 부르기에 궁금해서 보니, 순박하게 생긴 남자가 노래하고 있더라.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이 생긴 사람이 노래는 잘하네’ 생각했다”며 그날을 돌이켰다. 이세준도 “‘골목길’의 고음을 힘들이지 않고 부르는 무대 모습에 기가 죽었는데, 가까이서 외모를 보니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 (가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하하 웃었다.

유리상자란 이름은 당시 소속사에서 여러 후보를 놓고 고민하다 결정한 이름이다. 박승화는 “내 성격에 너무 부끄러워서 팀 이름을 말도 못했”지만, 데뷔곡 ‘순애보’가 잘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에 대한 애정도 생겼다. 이세준은 “친구들한테 이야기하니 ‘예쁘다’ 하고, 나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이름대로 된 것 같아 더 좋다”며 미소를 보였다.

유리상자 이세준. 성격도 취향도 다른 우리 둘 5년간 개인 활동으로 마음의 여유 배려와 이해 덕분이죠 사진제공|제이제이홀릭미디어

● 축가에 지쳤던 ‘축가의 황제’

유리상자는 결혼식 축가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축가를 부른 횟수가 “족히 1000번은 넘을 것”이라는 유리상자는 “많을 땐 하루 7번, 1년이면 약 50회”의 축가를 부른다. 초기엔 해바라기 ‘행복을 주는 사람’, 한동준 ‘너를 사랑해’로 축가를 부르던 유리상자가 “이럴 바에 우리 노래로 하자”고 만든 노래가 ‘신부에게’다.

‘신부에게’를 낸 후 “약 2년 동안 주말엔 늦잠을 자지 못했”다. 박승화는 사회인 야구팀에 못나가고, 이세준은 교회를 못 갈 정도가 되자 어느 순간 축가에 대한 염증이 생겼다. 결국 대내외에 “축가를 하지 않겠다” 선언했다.

소속사를 옮기면서 쓴 전속계약서에 ‘축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명시할 정도였으니 축가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게 한다. 그러나 정에 이끌려 한두 번씩 하다보니 다시 원상태가 됐다. ‘자기만 확실한 분야가 있다는 건 가수로서 축복’이라는 주위의 말도 어느 순간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부터 20여년 축가를 꾸준히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식 문화의 변천사를 체감하고 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 점점 많아지고, 누가 하더라도 축가 순서는 꼭 있고, 뮤지컬 무대 같은 축가가 대세다. 결혼식 분위기가 밝아지는 추세다보니 우는 커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 주례를 서도 될 나이에 아직도 축가를 하고 있다”는 두 사람은 그렇게 20년 넘게 축가를 부르면서 자신들도 ‘부부 같은 사이’가 됐다.

유리상자 박승화. 축가를 부른 횟수만 1000번 이상 사라진 주말…결국엔 축가 불가 선언 하락세? 노래할 수 있음에 감사 사진제공|제이제이홀릭미디어

● 죽음이 우릴 갈라놓을 때까지

유리상자는 데뷔곡 ‘순애보’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처음 오신 날’ ‘사랑해도 될까요’ ‘신부에게’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유리상자는 “달달한 사랑노래로 상징”됐다. ‘기억력’ ‘여전히 나쁜 사람’ ‘결별’ 등 깊은 슬픔의 정서를 담은 노래도 발표하면서 호평도 받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완만한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쉽지도, 슬프지도 않다”며 언제나 노래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떤 가수들은 하락세를 못 견디고, 큰 좌절감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성격 탓인지 그런 것을 잘 받아들인다. 소극장 공연이 횟수도 줄어들지만 이렇게 사는 것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더 히트 되고, 더 반짝이고 그런 욕심은 없다. 이렇게 유리상자로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이세준은 11월7일부터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상연되는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에 출연한다. 동물원 음악으로만 이뤄진 작품에서 이세준은 김창기 역할을 맡는다. 남서울대 실용음악학과 책임교수인 그는 내년엔 대학원도 진학할 예정이다. 박승화는 CBS 음악FM ‘박승화의 가요속으로’를 5년째 진행중이다.

유리상자라는 팀은 멤버 한 명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는 두 사람은 “앞으로도 유리상자에 흠집 안내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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