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BIFF] 신수원 감독 “‘그 정권’에서 영화 틀었으면 어땠을까”

입력 2017-10-13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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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지수와 문근영, 신수원 감독(왼쪽부터) 이 12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두레라움홀에서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유리정원' 공식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신수원 감독이 또 다시 예사롭지 않은 작품으로 돌아왔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상처, 그로부터 훼손되는 영혼에 주목해온 감독의 색깔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을 통해 이어진다. 2년 전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 ‘마돈나’와 맥이 통하면서도 또 다른 차원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유리정원’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감독을 개막식인 12일 만났다. 예상 가능한 전개를 벗어나는 사건으로 영화를 채운 감독은 “영화 작업을 하기 전 소설을 쓸 때 느낀 여러 감정과 고민을 잊지 않고 있다가 담아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유리정원’…전작 ‘마돈나’ 구상하기 전 떠올린 이야기

영화는 이상을 가진 과학도가 타인의 욕망에 의해 꿈이 짓밟힌 뒤 자신이 태어난 숲으로 돌아가면서 시작한다. 숲에서 자신을 찾아온 무명 소설가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미스터리 판타지다.

앞서 연출한 ‘마돈나’에서 배우 서영희와 신예 권소현을 통해 가혹한 세상으로부터 상처 입은 두 여성의 삶을 그려낸 감독은 이번에는 문근영과 손잡고 또 한 번 독창적인 캐릭터를 창조했다.

극 중 엽록체를 연구하는 과학도 문근영은 열두 살 이후 한 쪽 다리가 자라지 않는 장애를 가진 인물. 매달려온 연구를 타인에게 빼앗기고 사랑한 남자와의 신뢰까지 꺾인 뒤 숲으로 돌아가 혼자만의 연구를 시작한다.

‘판타지’로 분류할 수밖에 없는 인물과 그의 인생을 설계한 신수원 감독은 “소설가가 세상으로부터 상처 입은 한 여자를 만나,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표절하는 이야기를 처음에 떠올렸다”고 시작을 소개했다.

하지만 작업은 쉽게 진척되지 않았다. 감독은 ‘마돈다’ 작업으로 선회했다.

“‘마돈나’ 시나리오를 쓸 때였다. 여주인공이 식물인간 뇌사상태에 빠진 내용을 쓰다가, 문득 ‘유리정원’이 떠올랐다. 식물인간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도 새삼스럽게 다가오더라. 마침 온라인에서는 여자 형상의 나무 사진도 화제였다. 여러 영감이 ‘유리정원’에 모였다.”

○4대강 언급…‘현실’ 담으려는 뜻도

신수원 감독은 스스로 “내 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루저”라고 말한다. 그를 주목받게 한 영화 ‘순환선’부터 ‘명왕성’, ‘마돈나’까지 줄곧 그렇다.

동시에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주로 여성을 내세워 그들의 삶을 그린다. ‘유리정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성감독이 만드는 여자 이야기’라는 구분은 그에게 중요치 않다고 했다.

감독은 “여성이라는 사실보다 내가 만들어낸 인물이 과연 관객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까 더 궁금하고 고민스럽다”며 “그렇기에 한 인물을 만들기까지 배우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된 ‘유리정원’은 25일 개봉 이후 관객들로부터 다양한 해석을 받을 만한 영화다. 결말을 두고서도 보는 입장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영화에는 ‘현실 문제’를 지나치지 않으려는 감독의 ‘뜻’도 엿보인다. 4대강 사업을 언급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신수원 감독은 “과거 내가 ‘그 정권’에서 이런 영화를 틀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며 “4대강 소재가 영화에 메인은 아니지만 엽록체 연구원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위해 전문가들을 취재하다 발견한 사실을 담았다”고 밝혔다.

신수원 감독은 국내 여성감독들 가운데 가장 왕성한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연출자로 꼽힌다. 뒤늦게 시작한 영화인만큼 에너지는 남다르다. 10년 동안 서울 한 중학교에서 사회과목 교사로 재직했던 그는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에 사표를 내고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영화를 시작했다.

연출하는 영화가 칸,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연이어 소개되면서 주목받지만 작품 자체가 가진 대중성은 크지 않아 폭넓은 관객의 선택을 받지 않은 것도 사실. 때문에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처럼 독립·예술영화를 발굴해 소개하는 무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수원 감독은 “신인 시절 자본의 도움을 받지 못하던 그 때, 새 얼굴을 발굴해준 곳이 바로 부산국제영화제”라며 “나 뿐 아니라 독립·예술영화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곳”이라고 애정을 보였다.

부산(해운대) |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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