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외야석] ‘굿바이 개구리 번트’

입력 2018-03-1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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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한국시리즈 5차전 3회말 1사 1, 3루 KIA 이용규가 기습번트로 3루 주자를 불러들이고 있다. 선취득점, 타자는 1루에서 아웃. 스포츠동아DB

야구는 1845년 처음으로 공식 규칙이 만들어졌다. 이후 진화를 거듭했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신중했다. 1857년에 9이닝 게임이 도입됐다. 1879년 지금과 같은 볼, 스트라이크 판정 그리고 파울이 자리를 잡았다. 당시 자동진루는 볼넷이 아닌 볼 아홉이었다. 조금씩 줄어든 자동진루 볼의 숫자는 1886년 5개까지 줄어들었다. ‘스핏볼’은 1921년에야 금지됐다. 1976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가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했다. 투수의 방어율 계산은 1978년 지금 방식으로 고정됐다.

100년이 훌쩍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더 흥미진진한 경기, 더 가치 있는 기록을 위한 여러 노력이 계속됐고 그 성과물을 우리는 사랑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ML)는 더 큰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ML 사무국은 젊은 층이 3시간 안팎 이어지는 야구 경기를 지루해 한다는 것에 경악했다. 그리고 이제 이를 어쩔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기시간을 단 1초라도 줄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야구 규칙은 1949년 지금과 같은 10개 섹션의 틀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70년 가까이 혁신적인 변화는 없었다. 야구가 다른 종목에 비해 가장 재미있는 규칙으로 일찌감치 완성됐다고 자부할 만 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러나 ML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규칙은 공평해야 하지만 그 역시 낡은 틀로 해석했다. 전국단위로 중계되는 경기는 이닝 당 공수교대시간이 2분25초지만 그렇지 않은 경기는 2분5초로 제한하고 있다. TV광고가 많은 경기와 그렇지 않은 게임의 차별이다.

ML은 2016년 초 고의4구를 투수가 직접 공 4개를 던지는 것이 아닌 벤치에서 수신호로 타자를 진루 시킬 수 있다는 새 규칙을 도입했다. 그러나 당장 시행하지 않았다. 선수노조와 충분한 대화를 거쳐 2017시즌에 처음 적용했다.

고의4구는 야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매력중 하나다. 장타가 두려워 타자의 출루를 허용해야 하는 투수와 포수의 비애감, 반대로 투지에 불타오르는 다음 타자, 살살 공을 던질 줄 모르는 직업의 특성 탓에 예상치 못하게 폭투를 던진 뒤 허탈한 표정을 짓던 투수, 모두의 허를 찌르며 아름답게 날아올라 개구리 번트를 하는 재치만점 타자, 그리고 KIA 김기태 감독의 ‘이범호 시프트’의 탄생까지.

KBO리그에도 올 시즌부터 ‘자동 고의4구’가 전격 도입됐다. KIA 김기태 감독이 고의4구 때, 3루수 이범호에게 포수 뒤로 가라고 지시했던 진풍경은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메이저리그는 이 모든 것을 포기했다. 마치 ‘흥행(돈) 앞에 그 어떤 야구 전통도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듯.

KBO는 지난 5일 규칙위원회를 열고 ‘자동 고의4구’ 도입을 결정한 뒤 8일 공식 발표했다. 시범경기 시작을 단 5일 앞둔 시점이었다. 일본프로야구도 올해부터 자동 고의4구를 도입한다. 발표 시점은 스프링캠프 시작 전인 1월 초였다. KBO는 국제적인 흐름에 재빨리 대응했다. 새 총재와 사무총장의 업무파악에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대한 현장의 주된 반응은 ‘뭐가 그리 급할까?’로 요약된다. 미국이 하면, 일본이 하면 무조건 따라 해야 할까. 퓨처스리그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충분히 현장과 소통한 뒤 결정하면 늦었을까. 개혁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큰 포용과 합의가 중요하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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