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풍당당 스크린”…2018 한국영화의 또 다른 키워드, 여성 그리고 성평등

입력 2018-12-07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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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 - ‘미쓰백’ - ‘국가부도의 날’(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CJ엔터테인먼트

올해 김태리·김혜수 등 여성배우 활약
미투 캠페인, 영화계 성평등 인식 고취
남성 위주의 문화에 새로운 기운 주입


“여성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 보다 더 깊게 공감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요청, 여성배우로서 계속 영화를 찍고 다양한 캐릭터를 맡고 싶다는 요청, 천편일률적인 ‘브로맨스’ 서사가 아닌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요청, 성별에 의한 위계 폭력이 일어나는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요청, ‘여성’이라는 성별이 더 이상 낙인이나 편견으로 작동하지 않는 조건에서 일하고 싶다는 요청, 더 오래 많은 경력을 쌓으며 영화 현장에 남아있고 싶다는 요청, 영화계에 진입할 때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여성 영화인들을 많이 보고 싶다는 요청….”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펴낸 영화산업 전문지 월간 ‘한국영화’가 특집기사로 다룬 ‘영화정책 이제는 성평등이다’ 속 한 구절이다. 한국영화사에서 2018년은 어쩌면 여느 해보다 ‘여성’을 키워드 삼은 이슈로 뜨거웠던 해로 기록될지 모른다. 여성인 영화관계자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여성과 관련한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영화’의 표현처럼 결국, 성 평등에 기반한 다양성에 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속에서 여성배우들의 활약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확연했던 해이기도 했다.


● 중견부터 신인까지…여성배우를 보다

한국영화계는 한동안 남성배우와 감독, 제작자가 주도해 남성적 기운 물씬한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왔다. 여성배우들의 무대는 줄어들었고, 이들은 스스로 “다양한 캐릭터”로 관객에게 다가갈 기회를 쉽게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아쉬움은 올해 강렬한 개성과 재능을 바탕으로 저력을 과시한 다채로운 여성배우들의 활약으로 달랠 수 있었다.

지난해 말 개봉해 올해 초까지 스크린을 달군 ‘1987’과 ‘리틀 포레스트’의 김태리를 시작으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협상’의 손예진, ‘미쓰백’의 한지민, ‘너의 결혼식’의 박보영, 현재 흥행 중인 ‘국가부도의 날’의 김혜수, ‘도어락’의 공효진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또 올해 한국영화는 ‘독전’의 진서연과 이주영, ‘마녀’ 김다미, ‘버닝’의 전종서 등 뛰어난 신인 혹은 조연들을 새롭게 발굴하기도 했다.

이들은 여성의 이야기와 여성 캐릭터가 이끄는 무대가 부족했던 극장가에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멜로부터 액션까지 이전보다 더욱 다채로운 장르 안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과시하며 한국영화에 풍성함을 더했다. 이 같은 토대는 다시 새로운 무대로 이들 여성배우들을 호출해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충무로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 성 평등의 소중한 고민

올해 3월 ‘한국영화 성 평등센터 든든’이 문을 연 데 이어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영화 성 평등 소위원회’를 조직했다. 이는 제작자와 감독, 배우 등 한국영화 각 부문의 남성 위주 문화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또 다른 바탕이 됐다.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발화한 ‘미투’(#Me Too) 캠페인의 불길이 충무로에 번져온 것이 큰 계기가 됐다. ‘명장’으로 불리던 김기덕 감독을 비롯해 적지 않은 남성감독과 배우, 스태프 등이 충무로 여성 영화관계자들에 성 폭력을 가했다는 논란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몇몇 영화관계자들을 충무로에서 퇴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영화계는 내부의 성 평등이라는 고민에 새롭게 다가섰다. 지난해 한국 영화산업을 결산하는 자료를 통해 영화진흥위원회는 처음으로 ‘한국영화 성 인지 통계’를 내놓기도 했다. 한국영화 내부에 감독과 제작자, 배우, 스태프 등 여성의 역할과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처음으로 밝힌 통계는 그만큼 한국영화계가 성 평등을 향해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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