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참고 기다린 조현우-김민재, 강한 소나무처럼 또 성장했다

입력 2019-03-27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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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조현우(왼쪽)-김민재. 스포츠동아DB

대한민국 축구에 볼리비아~콜롬비아로 이어진 3월 A매치 시리즈는 아주 중요했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2022카타르월드컵을 향한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펴야 했다.

목표가 이뤄졌다. 파울루 벤투 감독(50·포르투갈)이 이끄는 축구국가대표팀은 남미 2개국과 친선경기를 전부 이겼다. 22일 울산에서 맞선 볼리비아를 1-0,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마주친 콜롬비아를 2-1로 눌렀다.

특히 콜롬비아전은 대단했다. 골에 대한 집념과 끊임없는 전진, 빈 틈 없는 압박으로 6만 붉은 물결이 넘실댄 상암벌을 달궜다. 그라운드의 모두가 뭉쳐 난적을 격파했지만 음지에서 희생한 영웅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각자의 책무를 다한 골키퍼 조현우(28·대구FC)와 중앙수비수 김민재(23·베이징 궈안)다.

사실 대표팀의 3월 여정에 임한 둘의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저마다 이유로 상처를 안고 있었다. 무명의 터널을 뚫고 나선 지난해 러시아월드컵에서 숱한 선방 쇼를 펼친 조현우는 벤투 감독의 부임 후 처지가 바뀌었다. 경쟁은 원점으로 돌아왔고, 김승규(29·빗셀 고베)가 아시안컵을 책임졌다. 이유가 있었다. 반사 신경과 빼어난 감각과 달리 좋지 않은 발밑의 영향이다. 빌드업을 중요시하는 벤투 감독에게 조현우는 최적의 카드가 아니었다.

김민재는 아시안컵 직후 K리그1 전북 현대를 떠나 베이징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두 구단과 선수가 일찍이 베이징 이적을 합의한 상황에서 왓포드(잉글랜드)가 다른 에이전트를 통해 영입 의향서를 전달해 사태가 촉발됐다. 공식 레터도 받지 못한 김민재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좁았다. 그럼에도 그는 성장 대신 돈을 택한 ‘몰지각한’ 선수로 포장됐고, 엄청난 조롱과 비난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둘이 함께 호흡한 콜롬비아전은 명예회복을 위한 무대였다. 조현우는 벤치 대기가 유력했는데, 김승규가 경기 전날 장염 증세를 보여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퍼포먼스는 기대 이상이었다. 조현우는 수차례 실점 위기를 막았다. 상대의 18차례 슛(유효 7회)에서 실점은 한 골로 묶었다, 콜롬비아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포르투갈)이 “한국 골키퍼가 정말 잘했다”며 따로 언급할 만큼 활약이 눈부셨다.

온갖 욕설로 가득한 온라인과 달리, 김민재를 향한 현장의 시선도 따스했다. 모두가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긍정의 에너지를 가득 채운 김민재는 엄청난 활동량과 빼어난 위치선정으로 활력을 불어넣었고, 이재성(27·홀슈타인 킬)의 후반 13분 결승골에 힘을 보탰다. 하프라인 인근에서 빼앗은 볼을 경합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며 이재성에게 찔러준 것이 주효했다. 축구 인들은 “쟁쟁한 콜롬비아 수비진이 부럽지 않다”며 김민재를 극찬했다.

극심한 고난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기에 반전의 계기가 열렸다. 조현우는 “뛰고 싶었지만 겸손히 기다렸다. 빌드-업도 처음보다 많이 편해졌다”는 소감을, 김민재는 “많은 분들이 (베이징 이적을) 걱정했지만 내가 하기 나름이다.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면 점차 좋게 봐주시리라 믿는다”는 바람을 전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뿌리를 뻗는 푸른 소나무처럼 그렇게 이들은 또 한 뼘 자라났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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