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빛과 어둠이 만드는 진한 여운…영화는 영원하리

입력 2019-04-0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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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네마천국’ <끝>

2차 대전 참혹함과 궁핍함 속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 영화의 힘
어른 된 토토, 추억 떠올리며 눈물


“영사기의 빛이 정지된 프레임(카메라 셔터가 눌러진 시간만큼 기록된 일정한 장수의 연속된 이미지. 영화 필름의 폭 35mm 카메라의 경우 대체로 초당 24장)을 지나 일정 시간 동안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고, 영사기로부터의 빛이 차단되고 스크린이 아주 짧은 순간 어두워진 사이에 영사기는 필름을 움직여 다음 프레임을 ‘정위치’시키고, 다시 빛이 들어오면 새로 정위치된 프레임이 정지상태에서 스크린에 비추어지고, 또 다시 빛이 없어지며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이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면서 관객들은 자신들이 움직이는 그림을(혹은 현실 그 자체를)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영화에 관한 대중적 이론서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 간단히 설명한 영화 필름 상영의 원리다. 1991년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책을 쓴 영화 ‘장미빛인생’의 연출자이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낸 김홍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카메라가 그림을 구체적인 사진의 형태로 프레임 하나하나에 기록하고, 영사기가 그러한 프레임 사이사이에 어둠을 만들어 넣어 스크린에 비추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것이 바로 영화(=무비·활동사진)이다. “2시간짜리 영화를 본 사람은 사실 1시간만큼의 그림과 1시간만큼의 어둠을 본” 것이라고 말한 김 교수는 “영화의 가장 원초적인 매력인 ‘움직임을 보는 즐거움’이 사실은 일종의 눈속임에 의하여 가능하”다고 썼다.


● “삶은 영화와 다를까?”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시골 마을 지안칼도의 알프레도는 10살 때부터 이런 원리로 돌아가는 영사기를 지켰다. 낡은 극장의 비좁은 영사실에 불이 나기 전까지 그는 “같은 영화를 100번도 더 보며 늘 혼자 외롭게” 일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자신이 돌리는 영사기의 빛을 통해 ‘황금광시대’의 찰리 채플린과 ‘역마차’의 존 웨인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 혹은 비비안 리를 만났다. 그들은 끊임없이 알프레도를 향해 무언가를 말해주었다. 알프레도는 이들이 전해온 말을 인생의 또 다른 교훈으로 받아들였다.

일하는 데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개구쟁이 소년 토토에게 그는 그래서 이들의 말을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전해줄 수 있었다. 토토도 알프레도의 말을 통해 세상을 알게 모르게 배워갔다.

화재로 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어버린 알프레도를 대신해 새롭게 현대식으로 꾸며진 극장의 영사기사가 된 토토는 어느새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나이로 자라났다. 한눈에 반해버린 엘레나와 애틋한 감정을 나눴다. 하지만 사랑은 한순간 떠나버렸다.

“산다는 건 영화와 달라! 인생은 훨씬 더 힘들지.”

사랑을 잃은 절망의 시간에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어떤 영화, 어떤 배우의 대사였느냐고 물었을 때, 알프레도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생각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눈이 먼 자신보다 앞을 보지 못한다며 토토를 나무랐다.

하지만 실상 그것은 수많은 영화와 함께 살아오는 동안 깨우친 알프레도의 인생 경험이었다. 비좁은 영사실에서 작은 창을 통해 스크린에 투사되는 빛과 어둠, 그림과 어둠이 교차하는 반복의 순간에서 알프레도는 그 자신, 토토처럼, 인생을 깨달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프레도는 “무엇을 하든 그걸 꼭 사랑하라”며 토토의 등을 떠밀었다. 영사실과도 같은 비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스크린처럼 넓은 세상으로 훌훌 날아가 꿈을 펼치라는, 더 오래 산 이의 경험치를 안겨주었다.


● “영화로 세상을 보다”

영화는 그렇게 토토의 어린시절을 가득 채워준 애틋한 추억으로 남았다. 알프레도가 힘겹게 영사기사로 일하며 “극장에 사람이 가득 차고 웃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행복해. 세상살이 힘든 거 잊게 해준 거잖아”라고 그나마 흐뭇해한 모습을 그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터이다.

영화는 알프레도와 토토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 전체의 공동체이기도 했다. 이들은 매일 밤 극장에 모여 검열로 인해 일부 장면이 잘려나갔어도 영화를 보며 환호하고 눈물 흘렸다. 마을 광장의 한 건물 외벽에 영화가 비쳤을 때 이들은 돈을 주지 않고도 함께 이야기를 즐기며 웃고 울었다.

그때 “광장은 우리 것”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서 광장을 그렇게 열어준 것, 그것 역시 바로 영화였다. 비록 엄격한 검열의 가윗날이 키스와 정사의 장면을 잘라내긴 했어도, 그것이 시대적 암울한 공기를 말해주는 것이라도, 사람들은 영화로 서로를 잇고 또 이었다.

그래서 스크린에 펼쳐지는 빛과 어둠, 그림과 어둠의 반복인 물리적 “눈속임”이라 하더라도, 관객에게 영화는 이제 자신의 세상을 채워주는 또 하나의 온기로 다가온다. “산다는 건 영화와 달라! 인생은 훨씬 더 힘들지”라는 알프레도의 명언을 기억하면서 관객은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인생을 들여다본다. 비록 “인생은 훨씬 더 힘들”더라도, 삶이 영화와 다르더라도, 관객은 영화를 통해 삶을, 세상을 그렇게 정면으로 응시하는 힘을 얻고 있다.


● ‘The End’…“아직은 끝이 아니야!”

알프레도는 검열 신부의 명을 따라 키스와 정사의 장면을 잘라낸 뒤 이를 버리지 않았다. 기어이 이를 붙이고 또 붙여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필름을 세상에 남겨 놓았다. 유명 감독으로 자라난 토토는 이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리는데, 그것은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어른이자 친구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토토는 이를 때마다 되새기며 더 진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를 만들어갈 터이다.

토토의 추억을 가슴 한 켠에 품으며 ‘윤여수의 라스트 씬’도 ‘시네마천국’ 편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으려 한다. 2017년 8월18일자부터 이 터무니없이 길기만 한 칼럼을 통해 소개한 49편의 영화도 모두 추억과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한 작품들이었다. 암담하고 차갑도록 힘겨운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새로운 세상과 꿈과 미래를 향해 가자고 말했던 영화들이기도 했다.

각 영화와 작품을, 각 영화와 작품의 마지막 장면(라스트 신)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칼럼을 이어온 내내 놓지 않으려 했던 생각은 그래서, 단 한 가지였다. 오래된 필름의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 얹혀진 ‘끝’ 혹은 ‘The End’ 자막을 대신하는 말, ‘아직은 끝이 아니야’라는 것이었다.

삶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고, 영화는 그런 삶과 세상을 또다시 담아낼 것이므로.


■ 영화 ‘시네마천국’은?

2차 대전의 참혹함과 궁핍함 속에서 피어난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소년 토토의 우정. 두 사람이 만난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낡은 극장 ‘시네마천국’ 영사실은 이들의 꿈이자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이 되었다. 1988년 이탈리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했다. 알프레도 역 필립 누아레와 토토의 아역배우 살바토레 카스치오의 연기로 감동을 얻는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역시 오랜 잔향으로 진한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 그동안 ‘윤여수 기자의 라스트 씬’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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