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팀 문화와 방향성

입력 2020-02-13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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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장병철 감독. 스포츠동아DB

지난 9~10월 순천 KOVO컵 때만 해도 한국전력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전 시즌 개막 16연패의 수렁 속에서 외국인선수 없이 토종선수들만으로 분투했지만 참담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장병철 감독이 새로 지휘봉을 쥐고 새 출발을 선언했다. 아쉽게도 FA시장에서 한국전력을 향한 선수들의 평가는 좋지 못했다. 러브콜을 보냈던 대부분이 외면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나마 팀에 있던 유명한 선수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떠났다.

감독은 새로운 팀 문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당분간은 바닥에서 힘들게 다져야 했다. 샐러리캡 최소 소진율을 고민할 정도로 선수단 구성은 빈약해보였다. 그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 순천 KOVO컵이었다. 기대를 모았던 외국인선수 가빈이 출전하고도 상무에게 1-3 패배를 당했다.

우리카드, KB손해보험에도 쉽게 졌다. 특히 중앙에서 너무 무기력했다. 몇몇 KOVO 관계자들은 “리그의 흥행을 위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 아닌가”라며 걱정했다. 열린 마음의 어느 팀은 “원한다면 선수를 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한국전력 김명관. 스포츠동아DB


예상대로 한국전력은 13일 현재 6승21패 승점22로 꼴찌다. 토종에이스 서재덕이 고군분투했던 지난시즌 4승32패 승점19는 이미 넘어섰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패배 속에서 희망은 보인다. 12일 풀세트 혈투를 치렀던 우리카드와의 경기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 김명관의 가능성이었다. 신장 195cm의 장신세터가 처음 주전으로 출전하자 한국전력 배구의 모양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까지 주전세터로 활약했던 이호건과 이민욱보다 공을 쏴주는 타점이 높은 덕분에 윙 공격수들이 훨씬 편하게 때렸다. 아직 가빈과의 호흡은 더 가다듬어야겠지만 2년차 이승준과의 호흡은 빛났다. 신장 195cm의 이승준은 우리카드 선수들이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가운데 특히 김명관의 연결에 특화된 공격을 자주 했다.

장병철 감독은 “그동안 젊은 2명이 힘든 훈련을 잘 견뎌내서 이제는 기회를 줄 때라고 생각했다. 몇몇 선수들이 훈련은 많이 하지 않고 경기에만 뛰면서 연봉은 많이 받으려고 하는데 스포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은 땀이다”고 했다.

사실 김명관은 한국전력이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하기 전부터 배구계의 시선을 받아왔던 기대주였다. 신인드래프트 때 “신인왕에 도전해보겠다”고 큰 포부를 밝혔지만 그 기회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몇몇 팀에서는 김명관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한국전력이 가장 필요한 포지션의 유명 선수를 제시하며 트레이드를 하자고 졸랐다. 한국전력은 거부했다. 팀의 미래를 책임질 귀중한 자원이라고 판단했다.

준비기간 동안 장병철 감독은 김명관의 생각을 먼저 바꿨다. 세터는 빠른 연결을 먼저 생각했다. 감독은 스피드보다 더 필요한 것이 공격수와의 조화라고 봤다. “억지로 빨리 연결하다보면 볼 끝이 죽어서 공격수들이 때리기 어려워진다. 기본에 충실하자. 공격수들이 잘 때리도록 높은 타점에서 편하게 밀어라”고 주문했다. 레전드 세터 권영민 코치가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힘든 시간 불평 없이 따라왔다. 결국 성과는 12일 본격적인 프로 데뷔무대에서 나타났다. 그가 등장하자 한국전력의 약점이었던 블로킹 벽도 높아졌다. 김명관은 3개의 블로킹을 하며 장신세터의 가치를 보여줬다. 장병철 감독은 “이변이 없는 한 이 구성으로 시즌을 갈 것”이라고 했다. 김명관은 이제 세터에게 필요한 실전 경험치만 쌓으면 된다.

한국전력 조근호, 김명관, 이승준(왼쪽부터). 사진제공 | KOVO


시즌 도중 1-2 트레이드 때 최홍석의 상대로 장준호와 함께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은 이승준도 한국전력의 내일을 기대하게 해준다. 신인왕 후보였던 구본승의 갑작스런 이탈로 구멍이 난 자리를 혜성처럼 등장해 메워버렸다. 그는 장병철 감독이 전부터 지켜보던 선수였다. 왼쪽의 높이가 상대보다 낮은 한국전력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봤다. 감독은 “점프 스타일이 다른 선수와 달리 늘어난다. 그동안은 자신이 가진 높은 점프를 활용하지 못했는데 빠르게 때리는 대신 높게 때리도록 폼을 교정했다. 아직은 어리고 평소 성격이 소심해 가진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남들보다 2배나 훈련을 잘 소화하면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왔다”고 했다. 우리카드전 18득점 55%의 높은 공격성공률은 그동안 흘려온 땀이 만든 숫자였다.

루키 김명관과 2년차 이승준이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전력은 3년차 김인혁과 함께 팀의 골격을 세우게 됐다. “인성 좋은 선수들과 함께 열심히 하는 팀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생각이 차츰 자리를 잡아간다는 얘기다. 군에서 복귀한 리베로 오재성도 후배들과 함께 무게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추구해온 방향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서재덕이 병역의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 정말로 탄탄한 팀이 될 가능성은 보인다. 감독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밑그림을 잘 그리고 디테일을 갖춰 실행하는 능력이 진짜 실력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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