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브레이크] 랜디 메신저가 될 수 없던 니퍼트의 쓴웃음

입력 2018-12-1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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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8시즌 통산 102승으로 외국인 최다승. 올해도 퀄리티스타트 20회로 리그 2위. 하지만 더스틴 니퍼트를 내년 KBO리그에서 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반대로 일본프로야구는 8시즌 이상 뛴 외국인 선수를 국내 선수처럼 분류한다. 그들이 써온 역사에 존중을 보내는 동시에 팀 전력 강화를 위한 선택이다. 스포츠동아DB

# 6월 29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KT 위즈의 맞대결. KT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37)는 7이닝 2실점 호투로 7-3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6승째이자 KBO리그 통산 100승째. 그 때까지 KBO리그를 밟은 223명의 외국인 투수 중 사상 첫 100승 고지를 밟는 순간이었다. 2011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뒤 8시즌, 200경기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100승까지 필요했던 경기는 1987년 김시진(당시 삼성 라이온즈·186경기), 1990년 선동열(당시 해태 타이거즈·192경기)에 이어 세 번째로 적었다.

# 위대한 성과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니퍼트는 2018시즌에 앞서 두산과 재계약에 실패했다. 은퇴까지 고민했지만 KT가 손을 내밀었다. 시즌 초 부진이 이어지자 니퍼트는 자진해서 감독실까지 찾아 미안함을 전했다. 시즌 중반 그는 “나이가 든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예전처럼 구위로 상대를 승부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떨어진 힘은 늘어난 관록이 채웠다. 니퍼트는 올 시즌 10승 달성에 실패했지만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 20회로 리그 2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니퍼트는 올해 KT 보류선수 명단에 제외되며 방출됐다. 1년 만에 다시 은퇴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더스틴 니퍼트. 스포츠동아DB


# 100승 달성 며칠 뒤 만난 그에게 ‘끝’을 물었다. 니퍼트는 “유니폼을 벗을 시기에 내 스스로가 납득했으면 좋겠다. 납득이 안 된다면 내가 먼저 은퇴를 선언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올해도 여전한 힘을 뽐냈지만 노쇠화의 굴레는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당시 비보도 전제로 ‘벌써 8년차인데 여전히 외국인 선수로 분류되는 것이 아쉽지 않냐’고 물었다. 장수 외인에 한해 규제를 풀거나 완화하는 기사를 준비 중이던 기자에게 니퍼트는 그저 쓴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 니퍼트와 동갑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는 랜디 메신저(한신 타이거스)는 2019시즌에도 한신 유니폼을 입는다. 2010년 한신에 입단한 그는 올해까지 9시즌 통산 249경기에서 95승77패를 거뒀다. 메신저는 내년부터 ‘외인 쿼터’의 적용에서 자유롭다. 국내 프리에이전트(FA) 조건을 충족하며 토종 선수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여덟 번의 정규시즌을 소화했다는 기준을 통과하면 FA 권리와 내국인 선수 자격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니퍼트는 메신저가 될 수 없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다. 지난주 KBO 단장 워크숍이 이틀간 진행됐지만 외인 보유 확대 안건은 나오지 않았다. 니퍼트가 쓴웃음을 지은 이유를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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