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이병헌 감독과 김우빈을 만나다

입력 2015-03-31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이병헌 감독(오른쪽 사진)과 김우빈은, 스무 살을 맞은 세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스물’을 연출자와 주연배우로 합작했다. 개봉을 며칠 앞두고 술잔을 나눴다는 이들은 9살 차이지만 닮은 구석이 많은 친구처럼 보인다. 사진|싸이더스HQ제공·스포츠동아DB

김우빈…“한때 교수를 꿈꿨던 남자”
이병헌…“한때 야설 작가였던 남자”

이병헌 감독 “중학교 때 야설 써 글 늘어”
시나리오 작가 출신…지난해 빚 다 갚아

김우빈 “모델과 교수, 구체적 목표 세워”
모델만 할 줄 았았는데…연기의 맛 알아


스무 살. 누군가에겐 아련한 추억이고, 누군가에겐 곧 맞이할 설렘의 상징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온전히 홀로’ 고통스런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나이다. 그만큼 스무 살은 ‘무모할 만큼 용기 있지만 또, 산산이 부서지면서도 새 희망을 찾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영화 ‘스물’(제작 영화나무)이 바라보는 시선이 그것이다.

영화는 스무 살을 맞은 세 친구의 이야기다. 화려하지도, 눈물겹지도 않은 이들의 일상은 우습고, 대책 없고, 허무하기까지 하다. ‘답’이 없으면 어떠랴. 어느 길로 들어설지 고민하는 세 친구를 통해 영화는 ‘어느 쪽이든 가볼 만한 길’이라고 말을 건넨다.

순제작비 30억원, 상업영화 연출은 처음인 이병헌(35) 감독은 30일 개봉 첫 주말을 지나며 100만 관객을 모았다. 극장가도 오랜만에 활력을 되찾고 있다. 그 원동력은 감각적인 연출과 대사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꾸민 이 감독의 연출력과 함께 주연 김우빈(26), 스물다섯 동갑내기 강하늘, 이준호의 활약이다. 이 가운데 이병헌 감독과 김우빈을 만났다. 개봉을 며칠 앞두고 긴장된 마음에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였다는 이들은 서로 믿는 ‘친구’처럼 보였다.

‘스무 살’ 그리고 ‘20대’

전주가 고향인 김우빈은 14살에 진로를 결정했다. 친구들이 의사, 변호사를 꿈꿀 때 패션모델을 택했다. “키 크고 패션 감각이 좋은 엄마”로부터 받은 영향이었다. 부모는 반에서 1, 2등을 다투던 아들의 꿈을 반대하지 않았다. 스무 살, 모델학과에 진학했고 “모델학과 교수”의 목표까지 세웠다. “중고교 때 패션지나 쇼 영상을 보며 혼자 연습했다. 모델이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반대했다면 지금쯤엔 취업 준비하는 ‘미생’이지 않았을까.”

김우빈이 연기한 치호의 관심은 온통 여자에 쏠려 있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오직 여자다. 부모 용돈 받아 ‘숨만 쉬며 사는 잉여’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구석도 있다. 그런 치호와 일면 닮은 사람, 이병헌 감독이다. 20대 중반 ‘스물’의 초고 시나리오를 쓴 그는 “지금도 치호처럼 종일 가부좌 틀고 앉아 지낼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 전공자일 거란 예상과 달리 “아버지와의 거래”로 국제통상학과에 진학했다는 이 감독은 26살 때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힘들게 졸업했다. 학교가 싫었고, 학교도 나를 싫어했다.(웃음) 그래서 영화가 좋았다. 중고교 땐 나만의 영화 평점 수첩이 있었다. 혼자 순위 매기고 평도 했다. 아휴…, 유치하다. 중학교 땐 ‘야설’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그때 글이 는 것 같다.”

‘영화’와 ‘연기’

이병헌 감독은 작가로 이름을 먼저 알렸다. ‘과속스캔들’과 ‘써니’의 각본에 참여했고, ‘타짜:신의 손’, ‘오늘의 연애’ 시나리오도 썼다. 모두 재치에 속도까지 더한 차진 대사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런 매력은 ‘스물’에서 만개한다. 김우빈은 “감독님이 쓴 ‘19금’ 대사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하다보니 마치 치호처럼 까불대는 수다쟁이가 됐다”고 했다.

이 감독은 2년 전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로 유명세를 탔다. 감독이 되고 싶은 남자의 ‘지질한 현재’, 상당 부분 그 자신의 이야기다. 2주 만에 시나리오를 쓰고 한 달 반 만에 촬영을 마쳤다. “영화는 망했는데 누구도 실패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하하! 그땐 빚 느는 줄도 모르고 밥값, 술값 전부 냈다. 당연한 일이다. 작년 ‘오늘의 연애’ 작가료 받고 빚 청산했다. 드디어 제로인데, 이게 정말 어색하다.”

달라진 ‘현재’를 맞고 있기는 김우빈도 마찬가지다. “모델만 할 줄 알았다”는 그는 “처음 연기를 배울 때 두근거리고 떨리던 기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아무 것도 몰라 더 배우고 싶었던” 때였다. 지금 김우빈은 승승장구다. 영화 데뷔작 ‘친구2’부터 ‘기술자들’, ‘스물’까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찾는 곳도 많다. “아직 연기를 잘 모르겠다. 연기를 알면 안 되는 때이고. 아쉬움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사랑’ 혹은 ‘로망’

지난해 크리스마스 전야. 김우빈은 강하늘, 이준호와 술을 마셨다. 여자친구가 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이런 현실과 달리 영화에선 개성이 다른 두 여자와 사랑을 나눈다. 고교시절부터 사귄 여자친구(전소민)와 갑자기 나타난 연기자 지망생(정주연)을 두고 고민에 빠진다.

“사랑을 무언가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게 뭔지,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단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진심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은 여전히 물음표다.”

싱글인 이병헌 감독도 요즘 부쩍 연애나 사랑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 관심의 진원은 패션감각과 외모에서 비롯된다. 관객과 만나는 자리에서 자기표현을 주저하지 않는 유쾌한 ‘말솜씨’도 대중의 관심을 높인다.

정작 이 감독은 “영화 말곤 정말 아무런 관심사가 없다”고 했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그는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며칠이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그 외에 하는 일은 “친한 사람들에게 독설하며 술 마시기”가 거의 전부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