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①] ‘허스토리’ 감독 “여장부 안 어울리는 김희애, 오히려 신선”

입력 2018-07-17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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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민규동 감독이 영화 ‘허스토리’의 출발선에 선 시기는 1990년대 초반이었다. 영화감독이 아닌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이던 시절이었다. 20대 청년 민규동을 위안부 역사로 이끈 건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기자회견이었다. 그는 이후 영화감독으로 데뷔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면서도 당시 할머니의 외침이 ‘부채감’으로 맴돌았다고 고백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직후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바탕으로 영화를 구성해봤어요. 하지만 영화화 과정에서 좌절에 부딪혔죠. ‘누가 이 영화를 보려고 하겠느냐’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누가 투자하겠느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반응이 대다수였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시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돌덩이의 무게가 더 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민규동 감독은 3년 전 다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역사적 실화인 관부재판을 소재로 한 ‘허스토리’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조폭 영화나 전쟁 영화는 이미 많이 만들어졌지만 또 만들잖아요. 그런데 위안부 영화는 ‘왜 또 위안부 영화냐’고들 하죠. 저는 각각의 사람들이 부채감을 자극받으니까 보기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영화화의 당위성이 더 있다고 느꼈죠. 아직 위안부 문제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고, 아직 해야 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민 감독은 “준비해온 영화 중에 가장 작은 시나리오고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쓴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구상 단계에서부터 ‘허스토리’는 문정숙이라는 여성 인물이 끌고 가는 이야기였다. 문정숙은 실제로 관부 재판을 이끈 김문숙 한국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회장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특별한 영웅이 아닌 사람이 예순을 넘긴 연세에 새로운 길을, 올곧게 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자비로 아사히신문에 전면 광고를 낸다는 것도 굉장히 무모한 일이잖아요. 아마 다시 태어나도 그 길을 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거예요. 그 분의 이미지를 영화에 많이 투영했어요.”

김희애. 사진|NEW

문정숙은 배우 김희애가 맡아 열연했다. 여행사 사장인 문정숙은 우연히 부산 위안부 피해 신고 전화를 처음으로 개설하면서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고, 관부재판의 원고단 단장을 맡아 법정 투쟁을 이끄는 인물. ‘우아함의 대명사’ 김희애가 이전에 보여준 모습과 180도 다른 ‘여장부’ 캐릭터. 어쩌면 굉장히 도전적인 캐스팅이었다.

“도회적이고 우아한 캐릭터를 많이 하셨죠. 침착하고 조용하고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그간 드라마를 많이 하셔서 영화에서는 신인배우와 다를 바 없었죠. 개척된 바가 없었으니까요. 우리 영화는 나이 많은 배우가 필요하기도 했고 후보가 많지 않았어요. 김희애 배우를 떠올렸을 때 부산의 억세고 추진력 강한 이미지가 너무 안 어울렸기 때문에 오히려 ‘해 볼만 한 재미가 있겠구나’ 싶었어요. 새로 쓰는 도화지처럼 신선한 느낌이 들 것 같았거든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캐스팅이잖아요.”

김희애와 부산 사투리의 조합 또한 신선했다. 사투리는 김희애가 연기보다 앞서 먼저 우려하고 고충을 겪었던 포인트. 민 감독은 “김희애가 리딩 전날 너무 신경 쓰느라 응급실에 실려 갔을 정도로 노심초사했다”고 밝혔다.

“부산 사투리가 많이 도전이었죠. 사실상 정복이 불가능한 언어니까요. 초반에는 (김희애의) 사투리가 너무 어색했어요. 사투리에 신경 쓰느라 걱정이 많다보니 포기할까 고민도 했어요. 하지만 실존하는 분에 대한 표현이고 약속이니까 부딪혀보기로 했죠. 제 불신 속에서 김희애 배우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겁이 질려 있기도 했죠. 그런데 김희애라는 배우는 시합에 강한 선수인 것 같아요. 전날까지 기록이 안 좋아도 경기에 나서면 성적이 좋은 그런 선수요. 순발력이 뛰어나더라고요.”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김희애가 “민규동 감독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완벽주의의 ‘이응’도 못 썼다”고 전했다. 다음 작품을 기약하면서 “완벽주의를 보여주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데뷔작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찍은 작품이에요. 완벽주의를 다 펼치지도 못하고 시간에 쫓겨서 찍었죠. 이번 영화처럼 설렁설렁 찍은 영화도 없어요(웃음). 어떤 인물의 이미지를 새롭게 탈바꿈하려면 도저히 갈 수 없는 곳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 작품을 같이 하시면 제 완벽주의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끝과 시작’ ‘간신’ ‘허스토리’ 등을 통해 여성 캐릭터를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온 민규동 감독. 다음 작품도 여성 영화일 가능성이 높을까.

“모르겠어요. 그건 관객들이 결정해주겠죠. 많은 이야기를 썼고 좌절이 있었어요. 어떤 작품을 준비하다 좌절되면서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영화가 많았죠. 남성 이야기보다 여성의 이야기가 양적으로 덜 만들어졌으니 이야기의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해요. 관객들과 여성 영화가 동반성장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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