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외국인 지도자가 K리그에서 살아남는 법

입력 2018-04-1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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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감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분위기에 빨리 적응한 뒤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낼 수 있어야한다. 7경기 만에 첫승을 신고한 대구 안드레 감독의 과제이기도 하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베트남의 명문구단 호앙아인잘라이(HAGL)를 이끌고 있는 정해성 총감독은 외국인 지도자로서의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축구 기술을 가르치기 이전에 우선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들의 정서를 알고 접근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서둘러선 안 된다. 믿음이 생길 때까지 꾸준히 노력해야한다.” 그는 이해와 소통을 강조했다.

중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던 한 감독은 “선수뿐 아니라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했다. 외국인 감독이 오자마자 구단이 요구하는 성적을 내기란 쉽지 않다. 기다려줄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도 지도자의 능력이라고 했다.

타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는 건 상당한 모험이다. 첫 과제는 분위기를 익히고, 거기에 녹아드는 일이다. 선수단 통솔의 시작점이다. 적응이 끝난 뒤에야 자신의 스타일을 꺼내는 게 순서다. 그래야 마찰을 줄일 수 있다. 혈혈단신으로 지휘봉을 잡는다면 적응은 더 어렵다. 언어 소통의 불편함은 물론이고 스태프 구성조차 쉽지 않다. 선수 파악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회심의 카드를 꺼내기도 전에 성적은 구단의 기대치에 멀어진다. 이게 악순환이다.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가진 역량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 수 배우기 위해 비싼 돈을 들인다. 그들은 받은 만큼 경쟁력을 증명해야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국내 지도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면 굳이 비싼 돈을 들일 이유가 없다.

K리그에서 지휘봉을 잡은 외국인 지도자는 모두 21명이다. 최초의 외국인 감독은 1990년 대우(현 부산)를 맡았던 동독 출신의 프랑크 엥겔 감독이다. 첫 외국인 지도자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12승11무7패로 6팀 중 2위를 기록했다. 자신감이 붙은 대우는 이듬해 헝가리 출신의 비츠케이를 데려왔다. 외국인 지도자를 통해 선진축구를 이식시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비츠케이는 지휘봉을 잡은 첫 해 정상에 올랐다.

전 포항 파리야스 감독. 스포츠동아DB


비츠케이와 더불어 정규리그 우승을 맛본 지도자는 파리야스(2007년·포항) 빙가다(2010년·서울) 등 3명이다. 컵 대회까지 범위를 넓히면 유공을 지휘했던 니폼니시(1996년·아디다스컵)와 파리야스(2009년·피스컵) 빙가다(2010·포스코컵) 등이다. 브라질 출신의 파리야스는 가장 성공한 외국인 감독 중 한명이다. 선수단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과 화끈한 공격전술로 돌풍을 일으켰다. 포르투갈 출신의 빙가다도 지휘봉을 잡은 첫 해에 우승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파리야스는 역대 외국인 감독 최다승(83승55무43패)이다. 니폼니시(57승38무53패)와 귀네슈(서울·51승37무22패)도 50승을 넘었다.

전 서울 귀네슈 감독. 스포츠동아DB


외국인 감독의 전성기는 2009시즌이다. 파리야스와 귀네슈, 알툴(제주) 페트코비치(인천) 등 4명이 동시에 벤치를 지키며 국내 감독과 경쟁을 벌였다. 그 해 우승은 최강희 감독의 전북이 차지했다.

축구발전을 꾀할 수만 있다면 지도자의 출신을 따질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러시아 출신의 니폼니시 감독이 대표적이다. 미드필드에서의 세밀한 패스와 공격적인 전술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당시 국내 감독들은 “유공과 경기 하면 재미있다”고 했다. 니폼니시의 제자들(최윤겸, 남기일, 조성환, 하재훈, 윤정환 등)은 전술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터키 출신의 세뇰 귀네슈 감독도 수준 높은 지도력으로 팬들의 호응이 컸다. 한국대표팀 감독으로도 여러 차례 거론됐다. 이들은 K리그의 분위기를 재빠르게 파악했던 지도자들이다. 적응을 끝낸 뒤엔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냈다. 그게 성공비결이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K리그에서 올 시즌 외국인 감독은 대구의 안드레(46)가 유일하다. 안드레는 2000년 K리그 도움왕을 기록하며 안양LG(현 서울)를 우승으로 이끈 선수 출신이다. 한국축구를 누구보다 잘 안다. 2015시즌 코치로 대구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손현준 감독이 사퇴하면서 대행으로 팀을 이끌었다. 지도력을 인정받아 시즌 후 정식 감독이 됐다. 최초의 K리그 선수 출신 외국인 감독이다. 능력만큼 기대도 컸다.

하지만 그는 시즌 초반 힘겨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7경기(1승3무3패)만에 겨우 첫 승을 신고했다. 지난해에 비해 외국인 선수의 활약이 미미한 게 부진의 원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감독의 역할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를 잘 아는 축구인들은 “순하고, 사람 좋다”고 했다. 사람 좋다고 성적 잘 나오는 건 아니다. 지도자라면 마냥 좋은 소리만 할 순 없다. 날선 꾸짖음도 필요하다. 한 시즌을 끌고 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보여줄 때 선수들도 따라온다.

대구는 올 시즌 잔류가 목표가 아니다. 상위스플릿(6위 이내)을 향해 달려간다. 어정쩡한 축구로는 어림도 없다. 안드레가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줄 때 가능한 목표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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