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최강희 감독 “내게서 축구를 빼면 전북이 남는다”

입력 2018-04-2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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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현대 최강희 감독은 25일 춘천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서 강원FC에 승리하며 K리그 통산 감독 최다승 기록(211승)을 달성했다. 경기 종료 후 직접 메가폰을 잡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스포츠동아 DB

프로스포츠에서 기록은 해당 팀, 감독, 선수의 커리어를 빛내는 ‘흔적’이다. 최고의 기록을 남긴 주인공에게는 ‘전설(레전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전북 현대 최강희(59) 감독은 25일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9라운드 강원FC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통산 211번째 승리를 챙긴 최 감독은 김정남 전 감독(210승)을 제치고 K리그 통산 역대 최다승 감독이라는 영예를 차지했다.

최 감독은 2005년 전북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해 무려 14년의 인연을 이어오면서 5번의 K리그 우승, 2번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함께 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기록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소속팀 전북에 대한 자부심, 선수들과의 신뢰, 팬들에 대한 유별난 사랑은 그를 더욱 빛내고 있다. 그의 최다승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더 뜻깊다.


-기록 달성을 축하한다. 전화기에 불이 났을 것 같다

“하하. 여기 저기 전화오고 문자 폭탄이 터졌다. 아직 다 확인하지도 못했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주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최다승 기록에 의미를 두고 있는지?

“의미보다 일단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수들은 의식을 하고 있었다 하더라. 선수들이 만들어 준 기록이다. (강원FC와의)경기 끝나고 잠깐이나마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처음엔 1승하기 급급한 감독이었는데, 팀이 좋아지면서 승리가 많은 감독이 됐다.”

전북 최강희 감독(오른쪽 끝)이 25일 K리그1 강원FC와 원정경기에서 1-0으로 앞선 후반 5분 정혁의 추가골이 터지자 기뻐하고 있다. 최 감독은 이날 승리로 K리그 통산 211승을 거둬, 역대 K리그 감독 최다승 신기록을 세웠다. 춘천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211번의 승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감독 데뷔하고 3연패를 했다. 그 후 1승을 하고 다시 3연패를 했다. 7경기에서 1승6패였다. FC서울에게 홈에서 거둔 귀한 승리였다. 아직 기억이 난다. 그 때를 돌아보면 승리나 목표를 가질 여유가 없었다. 구단이 믿고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2009년 이동국, 김상식 같이 좋은 선수들이 구성 되면서 승리를 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상권에 있는 팀이 됐다. 어려운 시기에도 응원해 준 MGB전북 팬들의 성원도 빼놓을 수 없다. 팬들 덕분에 힘낼 수 있었다. 구단과 선수, 팬들이 나를 최다승 감독으로 만들어줬다.”


-한 경기, 한 시즌을 준비해서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감독으로서 최고의 즐거움인가?

“그 즐거움이 없으면 이 일을 못한다(웃음). 감독 초기에는 우승을 할 수 있을지 상상도 못했다. 구단에서는 ‘4등만 해도 잘 한다’고 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프로 팀 목표가 4등 일수가 있나. 첫 우승 이후 정상권을 유지했고 남들이 부러워할 클럽하우스도 짓고 이제는 유니폼에 별도 꽤 많이 달았다. 행복하다. 하지만, 그에 안주하면 팬들이 금방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애절하게 만들어왔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즐거움만큼 스트레스도 클 것 같다.

“스트레스 많다. 빨리 잊으려고 한다. 진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선수들에게 주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내가 괜찮다고 선수들을 위로한다. 졌을 때 휴식도 더 준다. 과거에 스승님들 중 진 경기를 새벽 3시까지 5~6번씩 돌려보는 분들이 있었다. 코치들은 대기하고 있느라 잠도 못자고…. 서로에게 스트레스다. 진 경기는 혼자서 복기를 한다. 선수들의 실수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하지 않는다. 2~3개월이 지나서 선수들과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때 한다. 일희일비 하지 않고, 우승해도 ‘3일만 기뻐하자’고 다짐한다. 스트레스가 안 쌓인다면 거짓말이지만, 감독의 스트레스가 드러나면 서로 좋지 않으니까 그걸 위해서라도 혼자 털어내려고 한다.”

전북 최강희 감독. 사진제공|전북현대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살이 찌지 않게 틈틈이 운동을 한다. 봉동 숙소 방에 자전거가 있어서 틈나는 대로 타거나 웨이트장에 있는 러닝머신에서도 뛴다. 새벽에 클럽하우스를 걷거나 뛰기도 한다. 체중을 항상 유지하려한다. 그렇게 운동하는 것도 나름대로 스트레스 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고의 감독인데, 가족들에게도 최고의 가장인가?

“하하. 가족들에게는 거의 하숙생이다. 수도권 경기가 없을 때는 두 달간 집에 못 간적도 있다. 딸이 결혼을 해서 지난 1월에 손주를 낳았다. 벌써 100일이라는데, 세 번 밖에 못 봤다. 사진이랑 동영상으로만 많이 보고 있다. 이 생활을 오래하니까 가족들도 그러려니 하는데,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숙소를 찾는 팬들과 식사 자리도 갖는데, 팬들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 것 같다.

“팀의 숙소가 외진 곳에 있다보니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전주 시내에서 버스 두 번 갈아타야 올 수 있는 곳이다. 어린 학생들도 있는데, 그냥 보내기가 미안해서 식사라고 같이 하게 된 것이 시작이 돼 벌써 10년 넘게 전통이 됐다. 감독 초기에 중·고등학생이었던 팬들이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찾아온다. 새로운 초등학생 팬들이 오면 ‘너희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 될 때까지 전북 팬 해야 돼’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어린이들이 1명에서 5~6명으로 늘어나고, 친구들 따라 축구장 왔다가 ‘전북 경기가 이렇게 재미있어?’라면서 팬이 되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더 즐거운 축구를 해야 한다.”


-감독에게서 축구를 빼면 뭐가 남는가?

“하하. 내 직업이 축구감독인데, 축구이야기를 뺄 수가 있나. 내게서 축구를 빼면 전북이 남는다. 인생에서 전북이 아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수, 팬들과 함께 하는 우리 팀, 내 팀이라는 생각을 한다. 많은 것을 이뤘지만,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경기 질을 높이고 좋은 축구를 해서 팬들과 함께 행복하게 역사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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