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ICT 월드컵은 위기일까, 기회일까

입력 2018-05-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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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4년 브라질월드컵 정상에 오른 독일을 두고 ‘기술의 승리’라는 얘기가 많았다. 물론 선수의 기량이나 조직력, 그리고 요아힘 뢰브 감독의 전술이 우승 원동력이었겠지만, 그것 말고도 또 다른 도우미가 있었다. 독일의 소프트웨어 기업인 SAP을 두고 하는 말이다. SAP은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분석프로그램인 매치 인사이트(Match Insight)를 개발해 독일 선수들을 도왔다. 선수 몸에 센서를 장착해 운동량이나 순간 속도, 심박수 등을 분석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자국은 물론 상대팀 전력에 대한 기록도 제공했다. 감독은 경기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보면서 전술을 짤 수 있었다.

체력으로 혹은 정신력으로 축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과학이 접목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축구공이나 운동화, 유니폼 등은 이미 기술 진화에 발맞춰 첨단화됐다. 또 효율 높은 훈련을 위해 각종 전자장비가 동원되는 등 기술경쟁은 점입가경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그동안 경기장 안에서 전자기기 사용을 금지해왔다. 축구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FIFA도 더 이상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은 ICT(정보통신기술)의 경연장이라고 할 만큼 생전 처음 보는 장면들이 쏟아진다. 대표적인 게 비디오판독시스템(VAR)과 헤드셋 착용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VAR은 판정시비를 줄이기 위한 장치다. 월드컵이라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FIFA의 결심이 작용했다. VAR은 골, PK, 퇴장, 징계처리 오류 등 4가지 경우에 한해 비디오 판독을 한다. 이로써 더 이상 마라도나의 신의손(1986년 월드컵)같은 속임수는 없다고 보면 된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얘기도 사라질 것이다. VAR은 국내에서 열리는 평가전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6월1일)에서 A매치로는 처음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헤드셋도 관심의 대상이다. 벤치에 있는 감독이 헤드셋을 쓰고 기자석에 자리할 전력분석 코치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감독은 분석코치의 조언에 따라 전술 변화나 선수 교체가 가능하다. FIFA는 각 팀에 경기 영상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헤드셋, 태블릿PC를 나눠준다. 전체 흐름을 읽고 시시각각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건 분명 변수다.

팬들이 궁금해 하는 건 이들 첨단 장비의 도입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첫 선을 보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지만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다.

VAR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지난해 7월부터 K리그가 이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우리 수비수들이 익숙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주로 퇴장 및 PK와 관련된 판정에 적용됐는데, K리그 선수들은 1년 정도 경험하면서 준비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많다. VAR은 공격적인 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우리가 독일이나 스웨덴, 멕시코와 비교해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지기 때문에 상대의 공격을 많이 받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위험 상황에서 거친 파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VAR의 타깃이다. 퇴장이나 페널티킥의 위험성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다는 얘기다.

두 가지 다 일리가 있다. 이런 유불리가 있다는 판단을 먼저 하는 게 중요하다. 수비수나 공격수 모두 위험지역에서는 영리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헤드셋 부분도 마찬가지다. 쓰임새에 따라 전력분석능력과 지도자의 판단력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대표팀 지원시스템이 잘 갖춰진 유럽팀이 유리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리가 준비한 작전이 상대 분석관에게 들통 날 수 있다는 우려도 들린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하지만 나는 꼭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선수단 전체의 전력에서는 뒤질지 몰라도 코칭스태프의 판단력과 순발력의 우위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다. 이제 처음 겨뤄본다. 그래서 한번 해볼만한 것이다. 특히 우리는 코치와 분석관에 국내 및 외국인이 한 데 섞여 있다. 이들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만 있다면, 예측불허의 변수를 우리 편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번 월드컵은 변수를 상수로 만드는 능력을 요구한다. 3패라는 전망이 우세한 한국에겐 밑질 게 없다. 대회전부터 지레 쫄지 말고 ICT의 변수를 ‘통쾌한 반란’의 기회로 만들자.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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