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호의 형’이 아닌 ‘전북 수호신’ 홍정남으로 불러다오

입력 2017-04-2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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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북현대의 주전 수문장으로 발돋움한 홍정남은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개막 이후 7경기에서 불과 3골만 허용했다. 10년의 묵묵한 기다림 끝에 전성기를 활짝 열고 있다. 사진제공|전북현대

■ 10년의 기다림 끝에 전성기 맞은 GK 홍정남

피나는 노력으로 권순태 난 자리 꿰차
7경기 3실점 불과…주전 골키퍼 우뚝

“닥공 부담? 되레 다른 팀 슛 기회 적어
직접 우승 확정짓는 기분 꼭 느끼고파”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시간을 온전히 기다림으로 채운다면? 더욱이 확신도, 기약도 없는 세월이라면 과연 우리는 버텨낼 수 있을까? 대개는 혀를 내두르며 포기하거나, 다른 길을 알아볼 터. 그러나 모두가 똑같진 않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북현대의 수문장 홍정남(29)이 그랬다. 아주 저 멀리 가물가물한 목표를 향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거북이처럼 묵묵하게 전진했다. 결국 토끼를 이겼다. 여기서 ‘토끼’는 자기 자신이다. ‘극기’에 성공한 홍정남은 올 시즌 ‘아시아 챔피언’의 골문을 굳게 지키고 있다. 전북이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개막 이후 7경기 연속무패(5승2무)를 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막강 공격진이 12골을 몰아치는 동안 3골밖에 내주지 않았다. 클래식 12개 팀 가운데 최소실점이다. 무명의 ‘경험 적은 고참’이 자신감을 찾자 전북의 상승세도 지속되고 있다.

전북 홍정남. 스포츠동아DB



● 인내의 10년, 강한 자신을 만든 시간

참고 또 참았다. 견디고 또 견뎠다. 지금 거니는 꽃길이 펼쳐질 때까지 홍정남은 10년을 거의 벤치에서 보냈다. 여전히 “이 순간이 계속됐으면 하지만, 내 자리라고 확신하지는 않는다”고 겸손해하는 이유다. 2006년 12월 K리그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전북 유니폼을 입은 홍정남은 지난 시즌까지 26경기 출전(K리그 기준)에 그쳤다. 이 기간 39골을 허용했다. 시즌 평균 3경기에도 나서지 못한 것인데, 그나마 전북에선 10경기밖에 안 된다. 나머지 16경기는 2013년부터 이듬해까지 몸담은 상주상무에서의 출전기록이다.

그런데도 홍정남은 “감사하다”고 했다. “충분히 운이 따른 선수였다”고도 했다. 군 복무를 축구선수답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다고 한다. 전북 입단 이후 6년 동안 8경기 출전에 그쳤음에도 상주는 홍정남의 입대를 허락했고, 심지어 2014년에는 주전으로 기용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썩는 시간’이 아닌, 오히려 큰 희망을 얻은 시간이었다. “나도 할 수 있겠구나, 발전만 하면, 멈추지만 않으면 뛸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그런 생각이 오래가진 않았다. 병역을 마치고 전북에 복귀한 홍정남은 다시 기다림의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선배 권순태(33)의 자리는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상주에서 쌓은 자신감이 오기로 바뀌었다. 이를 악물고 훈련에 매달렸다.

상주상무 시절 홍정남.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전주월드컵경기장과 전국 경기장의 원정석에서 터져 나오는 팀 동료들을 향한 전북 서포터스의 우렁찬 응원구호를 들을 때마다 ‘언젠가 내 이름이 불리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치열한 주전경쟁으로 1년여 만에 사라지는 선수들을 숱하게 지켜봤기에 축구를 놓아버린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 “그저 더 버티겠다.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기다린 자에게 복이 있었다. 굳건히 전북을 지키던 권순태가 올해 초 일본 J리그 가시마 앤틀러스로 떠난 것이다. 루머가 아닌 오피셜 발표를 접했을 때, 날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얼떨떨했다. “이런 것이 기회인가?” 긴가민가했다.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없진 않았다. 일말의 불안감도 있었다. 축구계에선 끊임없이 전북이 새로운 골키퍼를 영입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전북 최강희 감독의 선택은 달랐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동계전지훈련 도중 모든 골키퍼들을 호출했다. 이 자리에서 최 감독은 “골키퍼 교체는 없다. 드디어 기회가 열렸다. 너희들이 직접 잡아라. 전북을 지켜내라”고 당부했다. 힘을 얻은 홍정남은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고 있다. 올 시즌 클래식 7경기를 전부 책임졌다. “올해 동계훈련을 가장 피나게 뛰었던 것 같다. 벤치의 신뢰에 보답하고 싶었다. 실력을 증명하기를 바랐다. 아직 부족하지만 사력을 다하고 있다.”

전북 홍정남.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스타(홍정호)의 형이 아닌 홍정남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홍정남은 국가대표팀 중앙수비수 홍정호(28·장쑤 쑤닝)의 친형이다. 다만 형제의 행보는 달랐다. 한 살 어린 동생은 일찌감치 유명한 스타가 됐다. 각급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1년 카타르아시안컵을 뛰었고, 2014브라질월드컵에도 다녀왔다. 해외무대도 빨리 밟았다. 2013년 여름 아우크스부르크(독일)로 향한 뒤 지난해 장쑤로 옮겼다.

당연히 형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수비수로 축구를 시작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포지션을 바꾼 그를 가족만 제외하고 주변의 친지·지인들은 대부분 ‘홍정남’이 아니라 ‘정호 형’으로 불렀다. 당연히 서운했다. 이제야 털어놓는다. “마음이 아팠다. 솔직히 동생을 질투하기도 했다. (멋지게 성장한) 동생이 너무 부러웠다.” 낙천적 성격이 이 때도 큰 도움이 됐다. ‘홍정호의 형’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으리라고 봤다. 한순간도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높이 비상하겠다. 반드시 좋은 선수로 기억될 수 있다’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홍정남이 입단한 뒤 전북의 전성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K리그 4회 우승(2009·2011·2014·2015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2016년)을 차지하며 전국구 클럽으로 발돋움했다. 여기에 아시아 최고 수준의 클럽하우스를 갖추며 내실을 단단하게 다졌다.

그러나 홍정남은 주연이 아니었다.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시상식에 대부분 참석했고, 활짝 웃으며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했으나 ‘진짜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조연도 아닌 조연’에 가까웠다. “현역으로 우승 한 번 못해보고 떠나는 선수들이 그토록 많은데, 나는 여기서 많은 우승을 함께 느끼고 즐겼다. 다만 가슴 한구석의 아련함이 있었다. ‘내가 직접 경기를 뛰고 우승을 확정짓는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 그렇다. 올해 기회가 찾아왔다. 트로피를 품에 안는 순간을 향해 뛸 뿐이다.”

전북 홍정남. 스포츠동아DB


사실 전북의 골키퍼는 몹시 부담이 큰 자리다.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를 기조로 하기에 수비부담이 크다. 위험한 장면도 자주 나온다. 그럼에도 홍정남은 “딱히 어렵진 않다”고 말했다. 상대에게 유효 슛을 내주는 빈도가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올 시즌 전북은 쓰리백과 포백을 오가며 나름 탄탄한 뒷문을 구축하고 있다.

“다른 팀이라면 10회 이상 슛을 날릴 것도 우리에게는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순간순간 장면을 놓치고 미처 대처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우리 수비수들은 사전에 이를 체크하고 미리 대처해놓는다. 나는 오직 1∼2개만 집중해서 막아내자는 생각만 한다. ‘실점이다’ 싶은 상황을 방어하면 1골을 얻은 것과 다름없다. 골키퍼가 잘하면 최소한 패하진 않는다.”

물론 숙제가 있다. 스스로를 향한 확신이다. 한국축구 최고의 수문장으로 한 시절을 풍미한 김병지(47)는 “주전으로 올라왔을 때, ‘여기가 내 자리’란 생각을 빨리 가져야 한다.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홍정남도 이를 실감한다. 결국 책임의식이다. “여기가 내 자리라는 생각을 굳힐 때 책임은 더욱 커지고, 그만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감히 약속드린다. 우리는 무조건 우승한다. 나 역시 영점대 방어율은 물론이고, 실점을 한 자릿수 내로 묶을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하겠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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