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토크②] ‘조작’ 박정학 “장군·범죄자 전문? 편한 연기도 OK”

입력 2017-09-13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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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배우 박정학이 각인된 순간은 언제일까. 어떤 사람은 ‘야인시대’를, 또 다른 이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이야기 할 것이다. 하지만 배우 본인은 영화 ‘무사’를 언급했다. “연극판에 있던 내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박정학이라는 배우도 있다는 걸 알린 영화”라며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Q. ‘무사’가 당시에는 드물었던 해외 올 로케이션 촬영인데다가 정우성, 장쯔이 주연이라 기억이 난다.

연극을 하면서도 드라마나 영화에 관심을 두긴 했었다. 그런 와중에 ‘무사’ 이야기가 진행됐다. 처음에는 제안을 받고 안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갔었다. 그런데 그 영화를 하고 나니 조금이나마 수입이 달라지더라. 그래도 그 때를 회상하면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Q. 아무래도 액션 연기가 많았거나 해외 촬영이었기 때문이었나.

‘무사’ 속 장면을 보면 모래바람이 많이 나오지 않나. 그게 CG가 아닌 실제 모래 바람이다. 모래 바람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강풍기도 들고 갔는데 그 곳이 원래 모래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다. 김성수 감독이 모래바람이 저 멀리서 불어오면 배우들에게 다들 언덕 위로 올라가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 번은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다들 쉬고 있을 때 안성기 선배에게 ‘그동안 찍은 영화 중에 어느 작품이 가장 힘드셨냐’고 여쭤봤다. 그 때 선배님이 ‘하얀전쟁 찍을 때가 제일 힘들었는데 이 작품으로 바뀔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 정도로 지옥의 스케줄이었다.



Q. 그렇다면 영화 ‘무사’가 배우 박정학의 터닝 포인트인가.

그때보다는 오히려 서른 중반에 스승을 만났을 때다. 과거 시립극단 활동 당시 한동안 주역만 맡아 나는 스스로 ‘내가 연기를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 단장으로 취임하신 이승규 선생님이 내게 연기를 시키셨다. 그러더니 ‘정학 씨 자기 말을 해야죠’라고 했었다. 그 말씀을 듣고 굉장한 충격에 빠졌다. 내 의지로 말하는 것과 멋있는 척을 하면서 말하는 것의 차이를 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흘러 내가 극단을 그만둘 때에는 ‘난 정학 씨를 믿었다’고 해주셨다. 감사한 분이다.


Q. 그런데 지금은 본인도 스승이 되어 있다. 학생들을 위한 연기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지 않나. 과거의 경험에 영향을 받은 건가.

사명감 때문에 연기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내 선생님 밑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을 특혜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배움들을 학생들에게 잘 전하고 싶다.


Q. 그렇다면 배우가 아닌 학생들의 연기 스승으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의지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인물이 되어서 그 상황을 흉내내는 것과는 다르다. 내 의지로 그 배역의 상황에 몰입해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재능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배우 본인이 많이 다쳐봐야 하고 상처를 입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계속 의심하고 확인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없으면 이 일은 매너리즘에 빠지기가 쉬운 직업이다.


Q. 그럼 앞서 ‘배우로서 30% 정도 밖에 보여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만큼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욕심도 클텐데.

그것보다는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늘 장군, 범죄자 같은 역할만 하니까. 흔히 말하는 ‘생활연기’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 연출가들은 시청률이나 흥행도 신경써야 하니 모험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부분은 조금 안타깝다.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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