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이제훈 “22살의 나? 연기 열망 가득했던 청년”

입력 2017-07-11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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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제훈은 인터뷰 중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들을 쭉 말하며 신나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을 통해 랩퍼 ‘비와이’를 만난 소감을 묻자 이제훈은 ‘팬심’을 그대로 드러냈고 이어 ‘지디’, ‘싸이’, ‘검정치마’, ‘볼 빨간 사춘기’ 등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줄줄이 말했다. 이제훈이 인터뷰 중 연신 미소를 지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 진지’할 것만 같은 그가 이리 ‘흥’이 넘치는 사람일 줄이야.

‘박열’에서는 이제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거침없고 당당한 조선 최고의 불량 청년 ‘박열’을 맡으며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얌전했던 머리는 부스스한 산발이 됐고 ‘우유 빛깔’ 피부에는 흙먼지를 덕지덕지 얹었다. 분장을 하고 나가면 사람들이 그를 못 알아볼 정도였다.

“모르는 사람을 쳐다보듯이 보더라고요. 처음에는 절 놀리려 장난을 치시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저인걸 아시고는 다들 놀라셨어요. 이준익 감독님도 깜짝 놀라시더니 ‘재미있네’라고 하셨어요. 처음에 제 모습을 보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걱정했는데 오히려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제훈은 처음, ‘박열’을 접했을 때 일제강점기 당시 느끼는 민족의 울분과 뜨거움만 드러내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면 볼수록 연기하기가 까다로운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대사 절반 이상이 일본어였다. 이에 현장에 있던 일본인 배우들이 이제훈의 일본어 대사를 가이드 해줬고 이를 녹음한 그는 입에 붙을 때까지 녹음 파일을 붙잡고 살았다.

그는 “(대본을)읽으면 읽을수록 신념과 행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노심초사하게 됐던 건 이 연기가 왜곡이 되거나 오해의 소지를 낳아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신중하게 접근을 했고 현장에서 내 자신을 예민하게 다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어 연기 역시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었다. 외국어로 공판정 장면에서 하는 대사는 감정을 담아서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이 캐릭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동시에 무게감도 상당했다”라며 덧붙였다.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 컸는지 꿈에서는 현장에서 대사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꿈이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일어나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고. 이제훈은 “공판정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전달하고자 바가 모두 집약돼있는 부분인데 대사를 잊어버린다는 생각을 하니 겁이 났다”라며 “그래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주변사람들이 ‘그만 좀 해’라고 할 정도로 계속 대사를 중얼거렸고 일본인 연기자들께 괜찮은지 재차 확인을 했다”라고 말했다.

외적인 모습을 가꾸는(?) 것도 신경을 썼다. 앞머리를 길렀고 뒷머리는 부분 가발을 붙였다. 수염을 붙여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박열 열사의 모습을 허투루 표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강했다.
“저예산영화라 회차가 매우 적었어요. 스태프 분들이 고생하시는데 저 혼자 편하자고 수염을 붙이고 지저분하게 밥을 먹을 수는 없었어요. 또 옥중생활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면 괜스레 숙연해졌어요. 실제로 22년 2개월 동안 감옥에 계셨고 단식투쟁도 하셨으니 극중에서 저도 힘에 부치더라도 절식을 하며 이겨냈어요.”

‘밥차’의 유혹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는 모든 상황을 극한으로 끌고 가길 바랐다고. 액션 촬영을 하거나 몸을 부딪치는 촬영을 할 경우 혹시나 모를 사고를 대비해 모두 더 조심하게 된다. 그런데 이제훈은 ‘욕심’을 조금 더 부렸다. 인력거를 태운 손님에게 맞는 첫 장면에서 그는 “진짜 무자비에게 자신을 밟아 달라”고 요구했다. 이제훈은 일본 경찰에게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가짜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고집으로 곤봉세례를 자처했고 촬영이 끝난 후 실제로 실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배우가 사고를 당하면 영화 촬영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되니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죠.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그 때는 뭔가 혹사를 당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상대배우에게 제가 잘 맞을 테니 그냥 막 밟아달라고 했었죠. 완벽하게 끝내고 싶은 욕심에 부탁했었어요.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대로 맞으니 헛구역질도 나고 몸이 휘청거리기도 하더라고요.”


22살의 박열을 연기하며 이제훈은 자신의 22살도 회상했다. 그는 “연기를 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던 때였다”라며 “멋진 연기를 펼치는 모습을 상상하기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이”라고 말했다.

“극단에서 연기를 하고 무대에 서보고 꿈과 이상향을 펼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어요. 군대를 안 가고 꿈만 꾸는 것도 두려웠고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도 정말 싫었죠. 무엇보다 내가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질까봐 두려웠어요. 그렇게 계속 가다가 24살이 될 때 결심을 하게 됐어요. 연기에 뿌리를 내려보자고요. 그래서 25살에 다시 연기 전공으로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들어갔고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다행히 지금까지 직진할 수 있게 됐죠.”

연기를 하면서 이제훈이 가장 크게 느낀 희열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내가 모르고 있었던 성격을 극대화시켜 캐릭터로 표현한다는 것이 즐겁다”라며 “나라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번에는 희극적이고 해학을 통한 조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 같아 놀랍기도 하고 내 새로운 모습을 알게 돼 신기하다. 솔직히 계속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배우의 인생을 가는 데 있어서 계획은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언제나 선택을 받는 사람이라. 그렇기 때문에 연기를 잘 하고 싶은 열망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어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게 제 연기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큰 독이 될 거라 생각하고요. 제 자신을 끝까지 재단하며 지켜봐야죠. 꾸지람을 듣고 깨지더라도 배우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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