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밥 한끼의 진심이 그들을 춤추게 했다”

입력 2015-12-1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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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파타야 유나이티드를 2015 태국 프로축구 디비전1(2부) 2위로 이끌며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성공한 임종헌 감독(가운데)이 코칭스태프를 격려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임종헌 감독

■ 부임 8개월만에 태국 2부 ‘파타야FC’ 1부 승격시킨 임종헌 감독의 회상

K리그 감독 후보군 탈출 위해 파타야행
열악한 구단 환경과 외로움에 자살 충동
몸관리도 안되는 선수 상대 맞춤형 지도

올림픽대표팀 2명 배출·‘감독상’ 수상
이젠 어디서든 잘 할 자신감이 생겼다


“너무 우울하고 외로워 때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소규모 클럽 파타야 유나이티드를 태국 프로축구 디비전1(2부리그) 2위로 이끌며 프리미어리그(1부) 승격을 일군 임종헌(49) 감독은 옛 생각에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파타야는 지난 주말 수코타이와의 정규리그 최종전(38라운드)에서 3-0 완승을 일궈 2013년 강등 이후 2년만의 승격을 확정했다. 태국 언론들도 ‘파타야의 기적’이라며 온통 떠들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임 감독은 4월 중순 파타야의 지휘봉을 잡았다. 8개월만의 놀라운 기적을 연출한 지금이야 “좋은 판단이었다”고 회상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아마추어 명문 부평고를 이끌며 최태욱 이근호 김승용 하대성 등 숱한 전·현직 스타들을 키워냈고,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울산현대 수석코치로 오랜 시간 일했지만 한국프로축구는 임 감독을 불러주지 않았다. 감독 후보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좁은 선택의 폭 속에 내린 결론은 파타야행이었다.

당연히 어려웠다. 태국의 대표 휴양지이지만 정작 그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낯선 문화와 환경, 통역조차 없는 척박한 인프라와 급여도 잘 나오지 않는 부족한 지원에서 지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파타야는 올 시즌 초 선수단 급여 미지급으로 구단주가 태국축구협회로부터 경질됐고, 현재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어 통역은 없었다. 영어를 하는 직원과 생존 영어를 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가끔 파트타임 통역을 부를 때도 있지만 많지 않았다. 홀로 라면 끓이고, 고추장 비빔밥 만들어 먹을 땐 ‘여기서 대체 뭘 하나’ 싶었다. 숙소인 14층 아파트에서 문득 자살충동까지 느낄 정도였다. 정말 병들겠다 싶었다.”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었다. 많게는 하루 2시간짜리 훈련을 위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저 축구 생각에 몰두했다. 프로의식은커녕, 가장 당연한 몸 관리조차 버거워한 어린 제자들을 위한 ‘맞춤형’ 지도가 필요했다. “복잡하면 전달이 안 됐다. 훈련을 이해하지도, 따라오지도 못했다. 최대한 간결하고, 가장 단순한 훈련 프로그램을 짰다.”

이는 팀 전체를 춤추게 했다. 더불어 ‘진심’으로 제자들에게 다가섰다. 선수 개개인을 따로 불러 밥을 사 먹이고, 차 한 잔을 함께 하며 단단한 관계를 만들었다. 효과가 서서히 나타났다. 끈끈한 신뢰로 뭉친 이들이 재미있는 축구를 하자 경기 내용이 나날이 발전했고, 차츰 성적도 좋아졌다. 자연스레 ‘이기는 맛’까지 깨우쳤다. 태국축구계 전체가 파타야를 주목한 것은 당연지사. 올림픽대표를 2명이나 배출하는 쾌거를 일군 임 감독은 태국축구협회가 수여하는 ‘2015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곳에 올 때 모든 걸 내려놓고 왔다. 모든 부분에서 아쉬운 팀을 ‘좋은’ 팀으로 바꾸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이젠 어디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우리 선수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조금 뒤늦은 시기에 성공적인 프로 사령탑의 첫 걸음을 내디딘 임 감독은 아직 재계약을 결정하지 못했다. 물론 파타야는 계약연장을 희망하지만 여러 곳에서 그를 주목한다. 물론 모두가 프리미어리그 팀이다. 태국축구에 강렬한 태풍을 일으킨 임 감독에게는 당연한 선물이다.


● 임종헌 감독은?


▲생년월일=1966년 3월 8일

▲출신교=부평동중∼부평고∼고려대

▲프로 경력=일화천마(1989∼1993년), 울산현대(1994∼1996년)

▲지도자 경력=부평고 코치(1997∼1999년), 고려대 코치(2000∼2001년), 울산현대 코치(2004∼2008년, 2013∼2014년), 파타야 유나이티드 감독(2015년 현재)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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