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훈의감독읽기]그중에제일은‘믿음’이다

입력 2008-04-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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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특정 선수를 보호하고 편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감독 스스로의 입지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하지만 감독도 인간인지라 선수 개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특히나 뜬금없이 감독이 데려온 이적 선수가 원래 팀에 자리를 잡고 있던 고참 선수들과 대립하거나 화합하지 못하고 붕 떠다니는 환경에서야 감독의 섣부른 편애로 팀이 사분오열 쪼개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감독의 역할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팀의 내부 문제를 최소화하고 선수들의 관심을 오직 팀 전체가 가진 목표, 즉 우승을 향해 매진하도록 이끄는데 있다. 그리고 그 복잡한 인간관계의 그물 속에서 소중한 선수들이 상처받고 좌절하고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조언해 주는 것도 감독의 큰 업무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감독을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선수가 가진 부족함을 배우는 대상이라는 인식이다. 이것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팀 내 불화는 감독이라는 카리스마 앞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만 결국은 언젠가 떠오를 유기된 시체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한국 감독들이 팀을 떠나면서 무수한 뒷이야기를 남기는 것은 감독이라는 직함의 카리스마로 팀 내부의 인간관계를 쉽게 지배했던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셈이다. 우리네 감독 사정이 이럴진대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구단에서 숱한 별들을 지휘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은 오죽하랴. 혹이나 개성 강한 선수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일은 없었겠는가. 아니 먼저 자리를 잡은 선수들에게 기가 눌려 멀쩡한 선수가 바보 되는 일은 없었겠는가. 맨유와 AS 로마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 퍼거슨은 멀쩡한 주전 선수들을 놔두고 동양에서 온 여드름 투성이 선수를 대동하는 것으로 언론을 시험했다. 난감하다. 영어도 서툰데다가 챔피언스리그 전야의 언론 접대 치고는 야박했다. 한국의 언론들이야 호들갑을 떨었지만 유럽의 언론매체들이 좋아라 했겠는가. 하지만 박지성은 10일 AS로마와의 홈경기에서 90분 동안 종횡무진하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박지성은 AS로마와의 2연전 모두를 풀타임 출전하면서 부상 이후 거성들 틈바구니에서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범부에 가까운 감독이라면 절대로 경기력을 의심할 만한 선수를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 투입하지 못한다. 퍼거슨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한다. 온갖 잡념과 불안, 그리고 상처받은 자존심을 두루 살핀다. 선수의 감정은 감독 밖에는 살펴줄 이가 없다고 본다. 송서(宋書)에 나오는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라는 말마따나 의심이 가는 선수는 하루 빨리 내 보내고, 일단 자신의 선수로 받아 들였으면 의심하지 않는 것이 거함 맨유를 이끄는 함장의 제일 덕목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선수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고, 신뢰 관계를 쌓는 것이 감독으로서 해야할 첫 번째 업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박지성은 한국 역사에서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든 ‘감독 복’을 타고났다. 하재훈 대한축구협회 기술부장·호남대 스포츠레저학과 겸임교수. 2003년 1년간 부천 SK 프로축구 지휘봉을 잡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또 깨우쳤다. 당시 느꼈던 감독의 희로애락을 조금은 직설적으로 풀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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