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내스틱만‘쌍칼’…반칙왕돼버렸죠”

입력 2008-04-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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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하키대표팀 선수들과의 사우나 토크. 상반신이 모두 권상우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축 처진 살들이 부끄럼을 탈 때쯤 쐐기를 박는다. “에이, 몸매는 열 살쯤 더…. 우리 훈련 한 번 해보세요. 쫙쫙 빠지니까.” 조성준(47) 감독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았다. “서종호(28·김해시청) 주장, 잘 있었죠? 저 훈련 같이 합니다.” “하하, 멍들 각오 하고 오세요.” ‘사랑의 매’ 하키스틱에 대한 안 좋은 추억 때문에 역정을 냈다. “주장이라고 때리면 되겠어요?” “그게 아니라 공 맞으면 시퍼렇게 피멍이 들거든요.” 꾀를 냈다. 보호장비를 착용하는 골키퍼 도전. “멍들각오 하고 오세요” 그래서 골키퍼 도전 잔꾀 샅보대·프로텍터…완전무장 공이 점점 빨라진다. 잡으면 안되는 하키 룰. 손(手)대신 數싸움, 그것이 문제로다 ○몸 풀기 언제나 선수들의 몸 풀기는 일반인에게 벅차다. 하키 장의 규격은 길이 90m, 폭 55m. 하키 장 다섯 바퀴를 도니 숨이 가쁘다. 엔드라인에서 하프라인까지 전력질주. 햇살을 받은 인조잔디의 열기가 올라온다. 준비 운동이 끝나자 경기장 둘레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시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 화상을 방지하고, 공이 더 잘 나가게 하기 위함. 물이 흩어지면서 푸른 잔디 곳곳에 무지개가 생긴다. ○캐릭터 인형처럼 가장 먼저 착용한 것은 낭심을 보호하는 샅보대. 다음은 코르셋처럼 생긴 GK 팬츠다. 신축성이 있어 오히려 몸에 딱 붙어야 편하다. 신발 위에는 킥이라고 불리는 덧신을 신는다. 정강이를 보호하는 레그가드도 필수. 상체와 목 부분을 보호하는 프로텍터는 꼭 야구의 포수 장비처럼 생겼다. 오리발처럼 생긴 큰 장갑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오른쪽 손에는 하키스틱까지 잡았다. 헬멧까지 쓰면 준비 끝. 대표팀 이명호(29·성남시청) 골키퍼의 도움을 받고도 10분가량 걸렸다. 320만 원짜리 옷이 이렇게 불편하다니. 땀도 쏟아진다. ○공은 무기 “너무 과하게 보호한거 아닌가? 이렇게 하고 어떻게 막아요?” 이명호에게 물었다. “그 만큼 공이 무섭다는 거죠. 필드 선수들도 골키퍼 시켜보면 다 공 피한다니까요.” 하키 공을 유심히 살폈다. 골프공처럼 작은 딤플들이 새겨져 있다. 가속도를 내기 위함이다. 무게는 156∼163g 사이. 야구공보다 약간 작다. 모든 필드 선수들의 입에는 마우스피스가 물려있다. 120km/h가 넘는 공이 언제 안면을 강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잡을 수 없다 골대 앞에 섰다. 높이 2.14m, 폭 3.66m. 생각보다 크다. “축구 골키퍼와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몸이 부자연스럽다는 것. 하나는 공을 잡을 수 없다는 것.” “일단 한 번 막아보세요.” 서종호가 스트라이킹 서클 바깥쪽에서 공을 때려준다. 군대스리가 주전 골키퍼 출신, 날아오는 공을 사뿐하게 막아냈다. “이렇게 하면 되죠?” “이건 트래핑 하는 게 아니에요. 공을 바로 앞에다 떨어뜨려 놓으면 상대가 리바운드 슛하잖아요.” 잡을 수 없다는 것이 큰 고민거리. 경기장 측면 쪽으로 공을 쳐내야 한다. 점점 공이 빨라진다. 몸을 날려야 한다. 몸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장비가 온 몸을 짓누른다. 옆구리가 쑤신다. 기왕 고생 하는 거 제대로. “주장, 아주 세게 한 번만 때려 주세요.” 서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계속 공이 빗나간다. 이번에는 골대를 맞추고. “세계적인 공격수가 왜 이래. 제대로 해 봐요.” “지금 (서)종호가 몸쪽으로는 일부러 안 때리는 거예요. 장비 이음새 부분은 보호가 잘 안되거든. 헬멧에 맞아도 충격이 커요.” 골대 뒤에서 이명호가 속삭였다. 역시 훌륭한 주장! ○골키퍼는 머리로 막는다 마지막 과제는 일대일. 각도를 좁히려고 나오는 순간, 공이 사라진다. 그리고 공은 골대 안에 있다. 무섭게 질주하다가 갑자기 공을 스틱으로 감추면서 골키퍼를 제친다. 이명호는 “골키퍼도 페인트를 써야한다”고 했다. 일부러 오른쪽을 열어주는 척, 상대를 유도한다는 것. 2000년 아시아주니어선수권 결승. 이명호는 결승전에서 페널티스트로크를 막았고, 한국은 인도를 3-2로 꺾었다. 페널티스트로크의 성공률은 축구의 페널티킥보다 높다. 어떤 사람도 하키공보다 빠를 수는 없다. 동물적인 감각은 데이터에서 나온다. 그래서 “경험이 쌓일수록 거미손이 된다”고 했다. 훌륭한 골키퍼는 물론 못됐다. 하지만 둔한 인간도 천재 골키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태릉을 나섰다. 태릉=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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