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기자가간다]뒤뚱뒤뚱꽈당~얼음판몸개그작렬!…쇼트트랙

입력 2008-06-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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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현장 체험.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부담스럽다. 아무리 종목이 많아도 막상 몸을 부딪히며 할 만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아이템 선정도 늘 고민거리다.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게 쇼트트랙. 데스크의 허가가 떨어졌다. “한 번 잘해봐, 여름이니까 시원한 곳에서 재미있게 배우고 돌아와.” 곧장 뇌리를 스친 이름. 명성은 물론, 현장성과 이론을 두루 갖춘 김기훈(41) 울산과학대 사회체육과 교수가 떠올랐다. 92알베르빌 동계올림픽과 94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1000m 종목을 휩쓸며 한국 쇼트트랙의 전성기를 엮어낸 바로 그 사람이다. 안면이 있는 그에게 바로 연락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20일 울산과학대 동부캠퍼스 아산 체육관으로 오세요. 그날 초등학교 선수들이 훈련하거든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세상에, 초등학생과 동반 훈련이라니…. ○ 16년 만에 다시 신어본 스케이트…몸이 무겁다 약속 시간에 맞춰 빙상장 사무실에 들어서니 날이 잘 서있는 스케이트와 헬멧, 무릎 및 팔꿈치 보호대 등 장비들이 이미 준비돼 있었다. 다행히(?) 딱 달라붙는 스판 유니폼은 없었다.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운동복은 초등학생용으로 제작돼 어차피 맞지 않았다. 쇼트트랙 선수를 거쳐 대표팀 감독을 지내고,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 교수가 환한 얼굴로 악수를 건넨다. 날카로운 안경 너머로 비친 강한 눈매와 대조적인 나긋나긋한 말투는 예전 그대로였다. “반갑습니다. 우리 오래 전의 추억을 한 번 되새겨보죠. 열심히 해보세요.” 김 교수와는 독특한 인연이 있었다. 십 수년 전,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배운 적이 있었다. 지하 링크로 기억되는데, 김기훈, 전이경 등 내로라했던 쇼트트랙 남녀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했었고, 한쪽 귀퉁이에서 얼음판을 지치고 있던 내 어깨를 한 선수가 툭 치며 한마디했다. “폼이 틀렸어. 그건 이렇게 해야지.” 5분간 공짜 교습을 해준 이 선수가 누구인지 몰랐는데 뒤늦게 부모님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지금도 그 때 받았던 김기훈의 사인이 방 어딘가에 남아있지만 그 이후 스케이트를 신어본 적이 없었다. “끈부터 잘 처리해야 해요. 양말은 두껍지 않은 면양말로. 발이 아프게 느낄 정도로 꼭 조여야 다치지 않아요.” 김 교수가 직접 끈을 조여준 스케이트를 신고, 링크 입구에 서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빙상 영웅’을 꿈꾸는 초등학교 선수들이 상기된 얼굴로 시원스레 얼음판을 지치는 모습까지 보니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다.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넘어지진 않을까?’ ‘16년 만에 들어선’ 링크. 다행히 미끄러지진 않는다. 다만 몸이 안나갈 뿐이다. 지레 겁먹고 있고, 폼이 좋지 못한 탓이란다. 지시대로 양 발을 11자로 놓고 무릎을 90도 굽혔다. 발목까지 수직으로, 허리는 동그랗게 구부리라고 하는데 조금씩 앞으로 전진한다. 벌써 이마에 땀이 맺혔다. 자꾸 발은 ‘V’자 형태로 서로 어긋나고 있다. 당연한 이치다. 속력을 내지 않은 채 무릎 잡고 밀기, 양팔 벌리고 밀기 동작으로 천천히 링크를 돌았다. 철저히 기초 동작이다. “잘하고 있어요. 예전에 배운 적이 있어서 꽤 잘하는 것 같은데요.” 기쁨도 잠시, 2002년 대표팀 상비군을 지낸 이승찬 울산과학대 빙상팀장의 집중 지도를 받은 13명의 초등학교 선수들이 휙휙 지나갈 때마다 균형을 잃는다. 모자란 실력이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대구, 부산 등 각지에서 스케이트를 배우다가 울산에 국제 규격의 빙상장이 생긴 뒤 전학을 온 선수들이란다. 자체(?) 휴식을 취하기 위해 펜스를 잡고 상체를 든 채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김 교수로부터 따끔한 한마디가 날아든다. “지금 그거 보실 때 아니잖아요. 제 교습에 전념해 주세요. 제 강의 생각보다 비쌉니다.” ○ 팔 흔들기…발 뒤로 돌리기,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모습이다. 오래전 한 코미디언이 모 프로그램에서 ‘릴레함메르’를 외치며 스케이트 타는 포즈를 취한 장면이다. 스케이트 날 ‘밀어내기’ 훈련에서 곧장 동작 훈련으로 돌입했다. 빙상 초보자가 한 달 이상 교습을 받아야 이뤄지는 훈련이다. 한쪽 펜스를 잡고, 오른쪽 스케이트 뒷날을 90도 세워 왼발 뒤로 모아주는 연습. 국가대표 감독 시절,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했던 김 교수가 허리를 지긋이(?) 눌러준 가운데 스케이팅 동작을 취하려니 장난이 아니다. 발을 뒤로 뺄 때 얼굴과 무릎, 스케이트를 일직선을 이루라고 하는데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유는 왜일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지만 그건 아니다. 빙판에 온 신경을 쓰다 동작에 집중하지 못한 까닭이다. 다만 아프고 힘들 뿐이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자 그제야 김 교수가 허리에 올린 두 손의 힘을 뺀다. 기초 동작을 가르친 김 교수에 이어 이번에는 이 팀장이 코너 스케이팅을 교육했다. ‘제2의 김연아’를 희망하는 피겨 꿈나무들이 다리를 들어올린 채 뱅글뱅글 돌고 있는 링크 중앙으로 이동해 균형잡기를 계속 했다. 이 팀장이 “상체에 힘을 빼고 허리를 110도 이상 숙여보세요”라고 하는데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간 운동을 포기하고 살았으니, 무리도 아니다. 또 스케이트 날이 서로 닿지 않게 오른발 넘기기를 하려니 무게 중심도 잘 맞지 않았고. ‘기우뚱.’ “오른발 무릎이 발보다 약간 먼저 넘어간다는 기분으로, 발을 놓을 때는 양쪽 발이 일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잘 될 턱이 없다. 간혹 균형이 무너져 미끄러질 때면 곁에 있던 피겨 소녀(?)들이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린다. 약 한 시간 반 가량의 수업을 듣자 자신감이 충만. 체험 마지막 코스로 13명 초등학교 선수들이 이룬 대열 맨 끝으로 이동해 함께 빙판을 함께 돌기로 했다. “배운 것 잊지 말고요. 훈련 내용을 복기하며 천천히 따라가세요. 기초가 탄탄해야 스케이팅도 잘한답니다.” 3바퀴 신호를 알리는 이 팀장의 호각이 울리자마자 어느새 이 친구들은 저 멀리 앞서 질주한다. 스타트부터 느렸으니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라스트라도 멋지게 하고 싶어 선수들 중간에 끼어드는 반칙까지 해봤지만 역시 선수들은 작은 공간을 통해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 대열을 이룬다. 마음만 급해 허겁지겁 따라붙으려니 스케이트를 타는 게 아니라 그냥 신고 뛰는 꼴이 됐다. 김 교수가 현역 때 그런 것처럼 한때 한국 쇼트트랙을 대표한 기술인 ‘날 밀어넣기’라도 시도할까 하다 결국 포기했다. 5바퀴를 더 뛰어도 동작과 포즈는 마찬가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김 교수가 씩 웃고 만다. 체험 약속을 하며 김 교수에게 “그래도 초등학생보다 느리겠어요?”라고 자신만만했는데…. 두 시간이 넘는 훈련이 지나자 종아리와 허벅지, 뱃가죽이 당겨온다. 수십개의 메추리알이 근육 사이사이에 잔뜩 박힌 것 같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신발을 신은 채로 허겁지겁 따라오던 사진기자도 함께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에라, 모르겠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그제야 링크를 가득 메운 시원한 기운이 느껴진다. 굳이 파스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 유독 후텁지근하고 끈적일 것으로 보이는 올 여름, 감히 독자들께 권유하고 싶다. 사람 북적이는 피서지를 피하고 싶다면 가까운 아이스링크를 찾아갈 것! 기회가 된다면 정식으로 스피드 스케이팅을 배워도 좋을 것 같다. 참, 강사는 잘 골라야 한답니다. 울산=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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