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아의푸드온스크린]엄마의만두,혀끝에밀려오는그리움…

입력 2008-07-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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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여자’사월이먹었던만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화는 시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비슷하다. 구한말 논둑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편에게 무명 적삼을 입은 아내가 “새참은 챙겨먹었어요? 뭐 드셨어요?” 했다면, 지금 영상폰으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건 남자도 “점심 먹었어? 뭐 먹었어?” 한다. 서양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동양의 예절 중 하나가 ‘밥을 먹었는가’로 치환되는 일상의 인사법이라고 한다. ‘식사를 잘 했나’가 일상의 안녕을 의미하는 인사로 대신하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거기서 나아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뭘 먹었는지까지 궁금해 할까? 대게 이런 질문에는 ‘그냥 바빠서 비빔밥’이다, ‘손님이 와서 스파게티’, 또는 ‘다시 사먹으면 내가 미친 놈인 동태찌개’를 먹었다고 대답한다. 사랑에 빠져 있는 친구가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데시빌이 극도로 높아지며 “어머, 진짜? 나도 점심에 불고기 뚝배기 먹었는데. 어머, 어머.” 하며 기절할 듯 웃을 때는 나도 종류는 다르지만 그녀만큼 큰 소리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같은 시간, 떨어져 있는 남자 친구와 내 뱃속에서 똑 같은 재료가 섞여 끓여진 뚝배기 불고기가 각종 효소에 의해 동시에 부식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신나고 좋은 걸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누구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보다 훨씬 즉각적이고 현실적이다. 그 혹은 그녀가 자장면을 먹고 있는 상상이 그려지는 것은 그가 파워 포인트로 기획안을 만들고 있는 것보다 가깝고 정겹다. 그가 좋아하는 삼선짬뽕, 그녀가 자주 시켜 먹는 하와이안 피자, 통화할 때마다 마시고 있다고 하던 아이스 카페라떼는 그 혹은 그녀와 헤어져 이름이 가물가물해질 때까지 명확하다. 잊혀진 사람에 대한 기본 정보는 함께 희미해져도 이름 하나로 떠오르는 음식의 질감과 촉감, 혀끝의 풍미는 탈색된 정보까지 떠오르게 하기 마련이다. 그게 음식의 힘이다. 며칠 전, KBS 2TV ‘태양의 여자’가 끝나자마자 야식 배달 가게에는 만두 배달 주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자신의 엄마인 줄 알았으나 존재를 아직 알리지 못한 사월이 우연히 자신의 엄마가 만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혼자 만두집에서 두 접시를 눈물을 흘리며 먹는 장면은 참 슬펐다. 엄마가 좋아하는 만두, 지금까지 만두를 좋아한다는 그 기본 정보도 모르는 채로 살아왔다는 서글픔과 그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이 먹었어야 할 그 만두를 혼자 먹는 그녀를 보며 함께 목이 메었다. 그 장면에서 만약, 엄마가 좋아한다는 책을 읽거나 엄마가 즐겨 듣는다는 음악을 찾아들었다고 하면 목은 메지 않았을 것 같다. 음식의 힘은 슬플 때 더 커지는 것 같다. 일상, 친밀함의 정점에 음식이 있다는 것은 하기 쉬운 말로 먹기 위해 살거나, 살기 위해 먹는 인생의 일상성 때문인 걸까?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호기심 대마왕’. 최근까지 잡지 ‘GQ’ ‘W’의 피처 디렉터로 활약하는 등, 12년째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방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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