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단일장기…가슴속엔주몽의피가

입력 2008-08-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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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일본 여자양궁 대표 하야카와 나미(24·사진). 그는 2003년까지 한국 선수였다. 이름은 엄혜랑. 전북체고를 졸업한 뒤 한국 토지공사에 입단해 1년간 활을 쏘다 2004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거기엔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조부모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그는 대학에 가지 못한 채 매일 활 시위만 열심히 당겼다. 누구나 그렇듯 올림픽에 한국대표로 나가 금메달을 따고 많은 돈을 벌어 좀더 편한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양궁은 너무 강했다. 국내 선수 1500여명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는 에이스 급에 끼지 못했다. 고교와 실업시절 국가대표 선발전에 두 차례 나갔지만 모두 조기 탈락했다. 그 어렵다는 국가대표 8명 가운데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표선수는 고작 3명. 그중에서도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리스트만 기억하는 한국 양궁이다. 전망이 불투명한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일본에서 재혼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양궁을 그만두고 일본에서 같이 살자”고 했다. 엄혜랑은 학교 교직원이 되고 싶어 일본체대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활을 다시 잡은 이유는 할 줄 아는 게 활 쏘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2006년 1월 국적을 바꿨다. 이름중 ‘랑(浪)’을 그대로 살려 하야카와 ‘나미(浪)’가 됐다. 지난해 3월 세계실내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한 하야카와는 일본대표로 뽑혀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베이징에서 한국 기자를 만난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가슴에 태극마크 대신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한 심정을 물었을 때는 작은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처럼 보였다. 한참을 망설이다 힘들게 한마디를 꺼냈다. “나라는 바뀌었지만 일단 올림픽에 나올 수 있어서 기뻐요. 기쁘다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올림픽은 나라간 싸움이 아니라 선수 간 경쟁이라는 얘기를 믿고 싶어요.” 일본생활 4년이 넘었지만 아직 일본어보다는 한국어가 능숙하다. 양궁 연습장에서도 비슷한 처지인 한국계 호주 대표 김하늘(26)과 있을 때 가장 말을 많이 하고 표정도 밝아진다. 지난해 프레올림픽 때 한국 웹사이트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기사를 읽었고, 그 밑에 달린 악플을 봤다는 얘기를 했다. “연예인들 심정이 이해가가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죠. 하지만 이제는 담담해졌어요” 대학 4학년인 하야카와는 최근 교생 실습에 다녀왔다. 최근엔 동생 엄혜련(21)도 일본으로 건너와 하야카와 렌이 됐다. “한국은 내가 태어난 나라이고, 일본은 내가 좋아하는 나라죠. 둘 다 사랑할 수 밖에 없어요”라고 엄혜랑 혹은 하야카와 나미는 말했다. 그는 9∼10일 열리는 여자 단체전 때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나간다. 한국팀과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조국을 향해 활을 겨눠야할지도 모르는 24살의 우리 핏줄 처녀에게 우리는 어떤 응원을 보내야 할까.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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