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칼과바둑돌에는눈이없다

입력 2008-09-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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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망가지는 바람에 흑으로선 영 재미없는 바둑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재미가 없다고 할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일단 꾸역꾸역 바둑판을 채워나가고 본다. 백이 <실전> 2로 붙이고 4로 끊은 것이 때린 데 또 때린 수. 이것으로 이 바둑의 운명이 결정지어지고 말았다. 백10까지 뻥 뚫려서는 흑이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백2로 붙여 왔을 때 흑이 <해설1> 1로 젖혀도 될까? 안 된다. 백14(11-2 자리)까지 이건 흑이 파탄이 나고 만다. 흑으로선 쳐다보기도 싫은 그림이다. 백4로 끊긴 뒤 <해설2> 흑1은? 역시 말이 안 된다. 흑이 백을 공격해야 하는데 이렇게 백이 곱게 연결해 가 버리고 나면 거꾸로 흑이 공격을 당하게 된다. 물에 빠진 사람 보따리까지 건져 줬더니, 보따리에서 칼을 꺼내 들고는 돈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다. 꾸역꾸역 넘긴 밥은 체하기 마련. 권오민은 이 바둑에서 급체하고 말았다. 166수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돌을 던졌다. 복기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승자와 패자가 모두 상대를 의식하고 있다. 이런 바둑의 복기는 길게 가지 않는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승자는 싱겁고, 패자는 쓰고 짜다. 이윽고 두 사람이 목례를 하고는 반상의 돌을 쓸어 담는다. 두고 난 돌은 대국자 스스로 담는 것이 원칙이다. 그 누구도 이 작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선배라 하여 자신이 둔 돌들을 내 깔려둔 채 일어서지 않는다. 반상에서는 위아래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 이런 말을 남겼을 것이다. “칼과 바둑돌에는 눈이 없다” 고.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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