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감독“인기를탐하지말라…감독은신”

입력 2008-09-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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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김성근 감독(66)이 4일 문학 히어로즈전 승리로 감독 통산 1000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김응용 삼성 사장(전 해태-삼성 감독)에 이은 프로야구 사상 2번째 대기록. 해태 한팀에서만 1000승을 달성한 김 사장과 달리 김 감독은 6개 팀을 옮겨다니는 부침 속에서도 1000승을 일궈냈다. 그래서일까, 적어도 이날만큼은 김 감독은 스스로를 숨김없이 대견스러워 했다. 표현에서 듬뿍 묻어나듯 1000승은 그의 삶이었고, 철학의 결정체였다. 노장 감독이 40년 지도자 인생을 더듬어가며 펼쳐놓은 회고담은 곧 “감독은 나의 의무”라 설파한 김성근 리더십의 에센스였다. 그 어록을 발췌해 소개한다. ○ 네가 결정지은 인생이니 네가 책임져라=1960년대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김 감독에게 어머니가 들려준 말. 김 감독 평생의 철칙이 됐다. 김 감독은 “대한민국 최고 선수가 되겠다는 각오로 갔지만 어깨가 부서졌다. 야구를 못하면 뭐로 밥 먹고 사나 고민하다 지도자를 결심했다”라고 털어놨다. ○ 첫 경기는 감독과 선수의 승부다=김 감독은 999승이 다 소중하다고 했다. 그러나 부임하는 팀마다 특히 첫 경기는 안 놓치려 했다고 고백했다. “선수의 신뢰를 시험받는” 무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아마 첫 경기는 한번도 안졌을 것”이라고 기억했다. ○ 인기를 탐하지 않았다. 그래서 살았다=무려 6개 구단의 1군 감독을 맡은 사실은 곧 다섯 군데에서 잘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김 감독은 “구단과 트러블도 있었고 야구계의 질투도 받았지만, 설 땅이 없을 정도로 몰렸지만 나는 타협하지 않았다. 목적 달성을 위해 인기를 얻으려 한 적은 없었다. 덕분에 몇배로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라고 말했다. ○ 이 세계는 이겨야 살아남는다=아마추어부터 김 감독은 ‘반쪽바리’ 소리를 들었다. 그럴 때마다 “두고 봐라. 내가 이기면 될 것 아니냐. 그런 정신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교포여서 일본식 야구라 낙인을 찍는데 대해 김 감독은 “이기기 위해선 그 팀의 레벨에 맞춰야 했다”란 말로 필사의 생존술이라고 항변했다. ○ 1000승은 나의 인생, 내 생명의 일부=김 감독은 말했다. “LG 그만둘 때만 해도 1000승은 나한테 꿈 같았던 일이었다. 한국에선 이걸로 끝났구나 싶었는데 기회 준 SK가 고맙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1000승은 하루하루 뜻 깊게 보낸 증거다. 1000승은 잡초 같은 내 인생 그 자체다. 굽히지 않고 선수들 살리고 살리다 여기까지 왔다. (김응용 감독의 1000승과 달리) 나의 1000승은 B급도 1000승이 된다는 산증거다. 얼마나 고생하고 만든 1000승이야. 내 생명의 일부다.” ○ 노력하고 고생했으니까 아이들이 안 놓치려 한다. 그게 SK의 장점이다=900승과 한국시리즈 우승, 1000승의 영광을 안겨준 SK 제자들에 대해 김 감독은 “우리가 올림픽 금메달도 땄는데 그 변화가 SK에서 시작됐다는 생각도 든다. SK의 ‘뛰는 야구’는 8개 구단 전체로 전파되지 않았는가”라고 자부심을 표시했다. ○ 감독은 절대적 신(神)이어야 한다=김 감독은 “리더는 자기 몸 사리면 안 된다. 밑의 부하들과 거리감을 둘 수밖에 없다”는 소신을 지니고 있다. 김 감독이 선수나 코치들과 식사도 같이 하지 않는 자기만의 ‘감옥’을 만들어 온 이유이기도 하다. 문학=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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