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리듬체조요정신수지“기술,그이상의아름다움…이젠눈떴죠”

입력 2008-09-16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00여 일만에 신수지(17·세종고)를 다시 만났다. <스포츠동아 5월 27일자 who's who?> 신수지는 메달을 따지 못한 한국선수 중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사소한 일상이 기사화가 될 정도로 제법 유명세도 치렀다.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했지만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소녀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진지한 눈빛만은 달랐다. 막연했던 세계정상의 꿈은 구체화된 듯 했다. 준비된 자는 짧은 시간에도 여러 꺼풀을 벗겨내는 법. 올림픽이라는 무대는 신수지를 분명 성장시켰다. ○신수지는 무대체질 리듬체조에서 한국선수로는 16년 만에 올림픽무대에 선다는 것도 대단한 성과였다. 하지만 더 큰 목표가 있었다. 세계 10강이 겨루는 결선진출. 하지만 시니어무대 2년차인 신수지에게 처음부터 쉬운 목표는 아니었다. 관심이 커질수록 부담감도 커졌다. 에브게니아 카나에바(18), 올가 카프라노바(21·이상 러시아), 인나 주코바(22·벨로루시), 안나 베소노바(24·우크라이나) 등등. 어림잡아 보아도 요정들의 숫자는 열 손가락을 넘어섰다. 잠을 설쳤다. 심리상담이라도 받고 싶을 지경이었다. 신수지는 카나에바의 담력을 동경했다. 둘은 러시아 나바고르스크 선수촌에서 함께 훈련한 친구 사이. 카나에바는 평소 신수지에게 “큰 경기를 즐긴다”고 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는 천하의 카나에바도 긴장시켰다. 연습 때부터 예민했던 카나에바는 결국 첫 날 후프에서 예정된 연기를 다 소화하지 못했다. 신수지의 차례. 떨리는 가슴을 추스르고 무대에 섰다. 신기했다. 7년 전 처음으로 무대에 서던 때 같았다. 초등학교 5학년, 만화책을 보다 대기실에 잠이 들어있던 신수지를 언니들이 깨웠다. “수지야, 네 차례야.” 그 때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기술을 구사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리듬체조의 불모지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짜릿함이었다. 처음에는 한국응원단만 박수를 보냈지만 주특기인 백일루션을 성공시키자 중국관중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신수지는 “응원소리를 들으니 힘이 나고 긴장감도 사라졌다”고 했다. 리듬체조 요정은 진정한 무대체질이었다. ○10,000,000분의 1의 표현력 신수지는 결국 12위로 예선을 마쳤다. 비록 결선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큰 실수 없이 무난한 연기를 펼쳤다. 첫 날 2위를 차지한 카나에바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량을 회복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수지는 “카나에바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다른 선수들은 마치 서커스를 하듯 난이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카나에바에게는 기술 이상의 것이 있다. 신수지는 그것을 “우아함과 세련됨”이라고 정리했다. 리듬체조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무엇. 그것이 4년 간 신수지가 보완해야 할 점이다. 다행히 신수지에게는 예술적인 끼가 살아 숨쉰다. 일레나 유레브나 니효도바 코치는 신수지의 손동작을 보고 “1000만 명 중 단 한 명만이 가질 수 있는 표현력”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니효도바는 리본연기에서 웨이브의 비중을 늘리며 신수지의 장점을 살려주고 있다. 신수지는 “반복연습을 통해 기술이 마치 로봇처럼 내 몸에 배게 하되, 내 흥까지도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어김없이 추운 올 겨울 박태환의 금메달에는 체육과학의 힘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태릉선수촌 밖에서 훈련을 하는 신수지에게는 전문 트레이너조차 없다. 신수지는 “지구력과 탄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과학적인 훈련으로 심폐지구력과 점프력을 보완한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 문광혜씨는 딸의 마음상태가 늘 걱정이다. 항상 기술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을 지고 사는 체조선수의 마음을 헤아려 줄 심리전문가가 필요하다. 올림픽 전에도 스포츠심리학 전문가와의 상담을 요청했지만 신수지의 차례는 오지 않았다. 과학적인 훈련의 부재보다 더 걱정인 것은 올 겨울나기. 신수지는 세마스포츠마케팅과 3년간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 해외전지훈련비를 지원받게 됐다. 하지만 그 시작은 내년부터다. 당장 올겨울에는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은 세종고 체육관에서 뿌연 입김을 내뱉으며 훈련을 해야 한다. 국제체조연맹(FIG)은 내년부터 시니어대회에서 곤봉을 빼고 볼을 추가했다. 예전처럼 자비를 털어 해외로 훈련을 가야 할 판이다. 신수지의 소원은 부모님 크루즈여행을 시켜드리는 것. “저한테 들어가는 돈이 엄청나다는 것 저도 잘 알아요. 어느 잡지에선가 봤는데 너무 멋지더라고요.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시니까 꼭 한 번 보내드리고 싶어요.” 매트위에서의 몸놀림처럼 마음씀씀이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운동생각에, 돈 걱정까지 해야 하는 모습은 17세 소녀의 맑은 눈망울과는 맞지 않아보였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