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안 되니 흑은 두는 족족 승부수들뿐이다.
바둑에서의 승부수는 야구의 ‘승부구’와는 다르다.
투수가 던지는 승부구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공이다. 타자와의 대결에서 결정적인 순간, 아웃을 잡아낼 수 있는 공이다.
일명 ‘머니 피치’라고도 한다.
잘 던지면 ‘돈’되는 공이라는 얘기이다. 선동열 감독의 현역시절 승부구는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슬라이더였다.
반면 바둑의 승부수는 우울하다. 바둑이 불리할 때, 무리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날리는 수가 승부수이다. 그런 만큼 위험이 크다. ‘먹히면’ 대박이지만 자칫 반격이라도 당하게 되면 속절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 당연히 바둑에서는 승부수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승부수를 두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바둑이 최선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만 굴러가던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프로들은 승부수를 던진다. 그래서 안 되면, 결국 돌을 ‘던진다’.
<실전> 흑3으로 이단젖혀간 수도 윤찬희의 승부수이다. 쉽게 가자면 <해설1> 1로 느는 것. 편하긴 하지만 흑▲의 체면이 안 선다. 이건 보태준 꼴이다. 바둑은 이미 이렇게 싱겁게 둘 수 없게 되어버렸다. 흑▲를 활용하기 위해 윤찬희는 흑3을 희생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실전> 백16이 차분한 수. 목진석은 윤찬희의 도발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
<해설2> 백1로 젖혔다간 큰일이 난다. 흑은 2·4로 백을 꽁꽁 틀어막을 것이다. 이것은 이 상태로 거의 빅이다. 게다가 바깥은 흑에게 철벽처럼 싸발리고 만다.
결국 바둑은 백 불계로 막을 내렸다. 목진석은 1승을 보태며 2승 1패로 결선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다. 윤찬희는 묵묵히 반상의 돌을 추스렸다. 흥분이 그르친 바둑.
그는 돌과 함께 마음을 쓸어 담고 있었다.<172수, 백 불계승>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