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막내며느리의전어의추억

입력 2008-09-26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저는 종갓집 막내며느리입니다. 시댁과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맏며느리처럼 한 달에 한번씩 제사도 모시고, 명절 음식도 거의 제가 도맡다시피 합니다. 몇 해 전부터는 장보는 것까지 제 일이 돼서 형님들 오시기 전에 음식 장만까지 다 하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때도 저 혼자 장을 보러 나가 전어를 사다가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났습니다. 그 때는 80년대 초반으로 다들 먹고살기 어려울 때였습니다. 냉장고도 몇 집 걸러 한 대씩 있을 똥 말똥했고, 전화기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날도 엄마가 전어와 배추를 사 오셔서 전어를 굽는다며 저더러 석쇠를 보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김치를 담근다며 돌확에 고추를 갈고 계셨습니다. 노릇노릇 전어가 구워지는데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그 냄새에 저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꼴깍꼴깍 넘기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이따금씩 “아야∼∼ 잘 뒤집어라∼ 아부지 드릴 것잉께 타지 않게 잘혀∼” 하고 외치셨고 그럼 저는 “알았응께 걱정 붙들어 매셔!!” 하고 크게 대꾸를 했습니다. 한참을 풍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전어를 굽는데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그 중에 한 마리 정말 맛있게 구워지는 전어가 있어 손톱으로 조금씩 뜯어서 전어의 맛을 봤습니다. 그 때는 왜 그렇게 생선가시가 많던지 조금 크게 살점이 뜯어진 데는 꼭 생선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어시식을 하다가 마침 방안에서 제가 좋아하는 만화주제곡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마치 자석처럼 방으로 들어가 만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부엌에서 “(엄마)아이고! 진아! 이 놈의 가스나야∼ 전어 좀 보랑께 이걸 다 태워부렀냐∼ 아까는 알았다 하드만 텔레비 보느라 생선 다 태워불고∼∼∼! 이거 아까워 어쩔 것이여∼” 하며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방안으로 뛰어 들어오시기 전에 빨리 피하려고 방문을 열고 대문 밖으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습니다. 한 대라도 안 맞으려면 도망가는 게 제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날은 금방 어둑어둑해지고, 제 편이 되어줄 큰오빠는 고등학생이라 아직 오지 않고, 아빠도 늦게 들어오셨습니다. 그렇게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숨어 있다가 다리도 저리고, 배도 고프고, 또 잠도 쏟아져서 어쩔 수 없이 살금살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못 보는 틈을 이용해 옥상으로 올라가 장독대 뒤에 숨었습니다. 옥상엔 항아리도 많고 대야도 많아서 숨을 곳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집들이 저녁을 하는지 밥 냄새, 음식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전 배고픔을 못 참아 소금항아리를 열어 그 속에 파묻어 두었던 계란을 하나 깨먹었습니다. 냉장고가 흔치 않던 그 시절엔 소금 항아리에 계란을 파묻어 두고 보관을 했습니다. 그렇게 계란을 다 먹고 잠잘 곳을 찾다가 엎어져 있는 커다란 대야 속으로 기어 들어가게 됐습니다. 대야 속은 어둡고, 따뜻했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잠이 스르르 왔었지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는 엄마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을 깼고, 살며시 대야를 들고 밖으로 나왔더니 제가 없어졌다고 온 동네가 난리가 났습니다. 저는 한참을 망설이다 나지막이 “오빠! 나 여그 있어∼” 하고 큰오빠를 불러 내려갔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아이고∼ 옥상에 숨었는디 고걸 모르고 이 난리를 쳤구먼” 하며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는 또 다시 빗자루를 들고 “이놈의 가스나야∼ 사람 애간장을 오지게도 녹여라잉∼” 하시며 저를 쫓아오셨습니다. 그 날 밤 저는 부모님이 제 앞으로 남겨놓으신 전어를 반찬 삼아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엄마는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하셨지만 노릇노릇 구워진 전어는 맛있기만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이해하기 힘든 옛날 일이지만 저는 전어만 보면 그 때 일이 생각납니다. 광주 광산 | 이진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