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타임13초2!…꿈을쫓는열정의러너,남자허들이정준

입력 2008-09-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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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트랙육상신기록제조기
9월25일 대구스타디움. 2008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 남자110m허들에 출전한 이정준(24·안양시청)은 자신의 종전 한국기록(13초55)을 깨며 13초53(2위)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최근 다섯 달 동안 벌써 4번째 한국기록경신. 트랙종목에서 이처럼 가파른 기록상승세를 보인 선수는 없었다. 이제 이정준은 명실상부한 한국육상의 아이콘이다. ○끝없는 욕심 한국기록을 깼는데도 이정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처럼 오늘(25일)도 내용은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이정준은 서울올림픽 남자200m 장재근 이후 20년 만에 육상트랙종목 1회전을 통과했다. 이정준은 2회전에서 6번째 허들을 넘으며 밸런스가 흐트러졌고, 7번째 허들에서 다리가 살짝 걸렸다. 한국기록(13초55)을 세웠지만 0.04초 차이로 준결승진출 실패. 대구에서도 “팔과 다리가 엇갈렸고, 밸런스가 무너졌다”고 했다. 이정준은 허리부상을 안고 달리고 있다. 하지만 기록페이스가 좋아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데도 참가대회마다 자기기록을 깬다. “만일 지금과 같은 감각으로 몸 상태까지 좋으면 13초4대까지도 뛸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불과 2년 만에 딴 선수가 된 원동력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용기’에 있었다. ○무모한 첫발 태권도를 좋아하던 소년은 달리기도 빨랐다. 하지만 초등학교에는 육상부가 없었다. 제자들과 조깅이나 하려던 미술선생님의 꾐에 빠져 스파이크를 신었다. 육상대회에 나갔지만 정식선수들은 이정준에게 칼 루이스 같았다. 오기가 생겨 육상부가 있는 잠신중을 택했다. 800m선수로 첫발을 디뎠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것은 역시 힘들었다. 이정준은 “600m 이후로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운동이 즐거울 리 없었다. 성적도 신통치 않아 예선탈락은 부지기수. 고등학교 진학도 어려웠다. 중2말, 다리를 쫙 벌리며 역동적으로 허들을 넘는 선배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다지 고통스러워보이지도 않았다. 110m 허들을 하고 싶었지만 코치는 “넌 스피드가 떨어지니 일단 400m 허들을 하라”고 했다. 스피드도 없으면서 110m허들을 하고 싶었으니 시작부터 무모했던 셈이다. ○싸우려는 자, 방법을 찾는다 고1겨울, 운 좋게 국가대표상비군훈련에 따라간 것이 전환점이 됐다. 후배들보다 못 뛰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운동장에 나가서 뛰면 그것이 자신의 폼. ‘다리를 올려라, 팔이 벌어진다.’ 기본적인 조언뿐이었다. 방송국에 전화를 했다. 세계선수권 비디오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왜 그 동작이 좋은지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면서 모방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이듬해, 거짓말처럼 국가대표상비군이 됐다. 한체대 4학년. 박태경(28·광주광역시청)이 한국기록(13초67)을 세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어떻게 뛰는 것이 잘 뛰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2007년 1월, 류시앙(25)과 함께 훈련하기 위해 상하이 제2체육학교를 찾았다. 소속팀에서 나오는 월급과 대표선수수당 등을 모두 털었다. 초우징 코치가 목표를 물었다. “내 꿈은 13초4다.” 돌아오는 비웃음. “넌 단지 13초7대를 뛸 수 있는 선수”라고 했다. 사실 이정준도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꿈일 뿐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잠시 뒤 이정준의 눈이 타올랐다. “당신, 똑똑히 지켜봐. 당신이 생각하는 내가 아니니까.” 기세에 눌린 초우징 코치. 이후 둘도 없는 사제지간이 됐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이정준이 한국기록을 세웠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도 초우징 코치였다. 역시 큰물은 달랐다. 허들을 넘을 때 왜 상체를 숙이는지, 골반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 그곳은 이해를 시키며 운동하도록 만들었다. 답답한 부분은 ‘허들의 교본’ 류시앙의 훈련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결됐다. 올 2월부터 6월까지는 일본 쓰쿠바대학으로 한 번 더 ‘무작정 유학’을 떠났다. “일대일로 가르쳐줄 수 없으니 알아서 훈련하라”는 코치의 등쌀에도 이정준은 꿋꿋하게 운동장을 지켰다. 중국에서 기본기를 익혔다면 일본에서는 섬세한 동작을 배웠다. 허들에 필요한 다양한 웨이트트레이닝을 접한 곳도 일본이었다. ○런던에서는 파이널 10월 전국체전이 끝나면 이정준은 미국 남가주대학(USC)으로 답사를 떠난다. 11월에는 본격적으로 짐을 꾸린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까지 미국에서 훈련을 할 계획. 대한육상경기연맹은 매년 1억원이 넘는 예산을 내놓았다. 이번이 가장 조건이 좋은 유학길인 셈이다. 최종목표는 13초2대 진입. 베이징올림픽 4위권의 기록이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파이널에 들겠다”고 했다. 2010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이 목표. “단, 류시앙의 부상회복이 더디다는 가정 하에서”라며 웃었다. 가장 큰 과제는 스피드보완이다. 류시앙이 100m를 10초2에 뛰는 반면, 이정준은 11초F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순발력을 향상시킬 계획이다. 육상의 불모지 한국, 핑계를 대기보다는 방법을 구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불가능을 현실로 바꿔 온 삶이었기에 큰 목표를 말하는 것에도 우물거림이 없었다. “내가 류시앙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당당했다. 이미 그는 한국의 류시앙이니까.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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