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가간다]‘카누’타기만하면곤두박질,이배혹시잠수함?

입력 2008-10-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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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 서울올림픽 개최 20주년 기념식에는 20년을 뛰어넘어 서울올림픽과 베이징올림픽의 메달리스트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행사 막바지, 메달리스트가 아닌 한 선수의 영상이 스크린을 채웠다. 행사가 지루했는지 이미 많은 선수들이 자리를 뜬 상황. 이순자(30·전북체육회)는 자신의 이야기를 빛나는 눈으로 끝까지 바라봤다. 이내 그녀의 눈가가 젖었다. 이순자는 “내가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다. 체육인끼리의 행사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종목. 하지만 이순자는 “카누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스포츠”라고 단언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 “글쎄요. 타 보지 않으면 모르시는데….” 전북체육회 카누팀이 연습을 하고 있는 전북 군산 은파유원지로 향했다. ○ 마음은 벌써 유원지 중앙에 나른한 오후. 가을볕이 따갑다고 느껴질 만하면 바람이 얼굴을 식혀주는 날이었다. 잔잔한 물결, 멀리서 보는 유원지는 아름답다. 하지만 물 속으로 한 발을 들여놓을 성 싶으면 그 물결은 멀리서 보던 것과는 달리 무서웠다. 살짝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 이순자의 성화. “아니, 그 복장으로 들어가시게요? 물 속에 빠지면 어쩌시려고….” 카누 선수들에게는, 특히 초심자의 경우라면 수영복처럼 타이트한 복장이 중요하다. 헐렁한 옷을 입고 물에 빠졌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 이순자가 구명조끼까지 입혀줬다. “처음에는 물에 떠 있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오늘은 물과 친해진다고 생각하세요.” 유영진(23), 심재연(20)이 1인승 카약을 가져왔다. “한 번 들어보세요.” 분명 12kg이라고 했는데 무게중심을 잡기가 힘들어 머릿속의 그 무게보다는 무겁게 느껴진다. 카약은 전·후 대칭형이 아니다. 뱃머리가 긴 이유는 물의 저항을 최소화시키기 위함. 올림픽에서 카누 종목에는 총 16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육상(47개)과 수영(46개), 체조(18개)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금메달을 다투는 종목이다. 하지만 염인화(19)는 “카누와 카약의 차이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며 서운해 했다. 카누용 배는 카약(Kayak)과 카누(Canoe), 두 종류가 있다. 카누는 노깃(블레이드)이 1개인 노(페들)를 사용한다. 반면 카약은 노깃이 양끝에 하나씩, 2개인 노를 쓴다. 외날 노를 사용하는 카누보다 양날 노를 쓰는 카약이 더 빠르다. “오늘 이 카약을 타고 유원지 한 가운데까지 가시면 제가 카약 한 척 드릴게요.” 홍성남(30)의 한 마디. 카약의 가격은 600-700만원선. 스포츠카처럼 날렵하게 빠진 카약은 1000만원 가까이 한다. 선수들은 “실력이 비슷하다면 결국은 장비싸움”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원지의 정중앙이라고 해봐야 뭍에서 100m도 채 안되는 거리다. 600만원이 걸린 싸움, 마음은 벌써 노를 젓고 있었다. ○ 중용의 미덕으로부터 “일단, PT체조부터요.” 이순자는 “혹시 모를 불상사(심장마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서운하게도 계속 물에 빠질 걱정부터 하고 있다. 그러나 카약에 올라타는 순간 이순자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카약은 배의 밑동이 급격하게 좁아지는 모양이다. 무게중심이 약간만 한쪽으로 쏠려도 배는 뒤집히고 만다. 페들을 카약과 뭍에 걸치고, 그 쪽 페들을 손으로 지탱한다. 카약에 오르는 순간, 물 쪽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기 때문에 미리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다. “첨벙.” 오르면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끝까지 페들을 놓지 마세요. 타는 순간부터 나는 빠진다고 생각하면 안 되죠.” 이순자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분 동안 같은 자리에 머물다보니 물에 빠지는 것에 적응이 돼 버린 것이 사실이었다.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그 쪽 방향 페들로 물을 때리세요.” 뉴튼의 제3법칙. 작용반작용을 이용해야 한다. 블레이드로 물을 톡톡 두드리니 거짓말처럼 중심이 잡혔다. 그렇다고 과하게 두드려서는 안 된다. 반대편으로 기울어지기 때문.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오뚝이가 됐다. 이순자는 “카누 선수들 중에는 모난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중용의 미덕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카누는 시작된다. ○ 카누는 물·바람과의 대화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어요.” 30분 넘게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자 이순자가 무엇인가 결심을 한 듯했다. “얘들아 레저용 카누 좀 가져와봐.”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 배는 못탄다”는 말이 분명했다. “저 이것 계속타면 안될까요?”, “저기 중학생 선수들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노를 젓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제2의 이순자를 꿈꾸는 황정아와 김지인(이상16). 둘은 “물 위에 떠 있기 까지 1주일, 노를 젓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고 했다. 홍성남은 “성인 선수들도 허리와 엉덩이를 이용해 균형을 잡느라 카약에서 내리면 온 몸이 뻐근하다”고 설명해줬다. 두말하지 않고 레저용 카누에 올라탔다. 레저용 카누는 배 밑동이 평편해 물에 뜨기가 쉽다. 과감하게 페들을 젓는 일만 남았다. 페들은 손을 위로 뻗은 키만큼이 적당한 길이. 블레이드는 왼쪽과 오른쪽의 각도가 다르다. 야구배트의 손잡이 부분 두께가 선수마다 다른 것과 같다. 선수마다 신체적인 특성과 페들을 젓는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개조를 한다. 선수들과의 500m 레이스. 송준영 감독의 출발신호. 선수들의 배에는 동력장치가 달린 듯 했다. 천부적인 부력을 자랑한다는 수영의 박태환(19·단국대)처럼 카누에도 ‘물을 잘 타는’ 선수가 있다. 페들로 물을 뒤로 제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물위를 걷듯, 페들로 물을 딛고 가는 것이 관건. 이런 기술을 사용하면 당연히 노를 젓는 횟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근력은 필수다. 왼쪽 노를 저으면 오른쪽으로, 오른쪽 노를 저으면 왼쪽으로 뱃머리가 쏠리기 때문에 완벽한 직선 형태의 레이스를 펼치는 것도 기록 단축의 열쇠다. 선수들이 저 먼 바다로 나가자 혼자가 됐다. 바람소리와 노 젓는 소리, 그리고 가냘픈 물결소리만이 귀를 간질였다. 이순자는 “새벽에 홀로 배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물과 대화를 할 수 있어서”라고 했다. 대기의 움직임은 물로, 물의 움직임은 노를 통해 자신에게 스며든다. 뒷바람은 체중이 적게 나가는 선수에게, 맞바람은 체중이 많이 나가는 선수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바람아, 내가 너를 맞도록 불어줘.” 말을 걸어도 자연은 대답이 없다. “붕어가 배를 밀어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면서요? 저는 왜 물과 대화가 안되죠?” 선수들은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10년은 타야한다”며 웃었다. 하지만 단 하루만에도, 노를 젓는 팔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평온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이라는 호수 속으로 노를 저어가는 것, 그것이 카누였다. 군산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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