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공필성코치의가을
롯데 공필성(41·사진) 코치는 한때 ‘움직이는 화약고’로 불렸습니다.
1991년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 당시 프로 2년차 유격수였던 그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떨어뜨려 동점의 빌미를 제공하고 맙니다. 결국 경기는 3-3 무승부. 롯데는 다음날 4차전에서 져 탈락했습니다. “정말 죽고 싶었어요. ‘난 이대론 부산 못내려간다’고 했죠.”
이듬해. 해태와 플레이오프에서 만났습니다. 5-4로 한점 앞선 5차전 8회, 주자는 2루. 해태 이순철이 롯데 염종석의 슬라이더를 노려쳤습니다. 총알 같은 타구가 3루수 공필성 앞으로 날아왔습니다. 몸을 날렸습니다. 잡아냈습니다. 이번엔 한점차 승리를 직접 지켜냈습니다. “주눅이 들어 또다시 놓쳤다면 난 영원히 ‘화약고’였겠죠. 하지만 두번째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근성’이 있었습니다.”
그해 롯데는 우승을 합니다. 공 코치는 “박정태가 베이스를 밟고 뛰어오르던 그 순간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랍니다. 지금 코치가 된 그는 1루에 버티고 서서 3만 관중의 열기를 가장 가까이서 느낍니다. 그래서 선수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올해가 됐으면 좋겠답니다.
쉽지 않습니다. 삼성을 넘고 두산을 건너 SK를 무찔러야 합니다. 게다가 올해의 SK는 ‘무적’입니다. 하지만 공 코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짓습니다. “당시 빙그레 타선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아십니까. 그 때도 모두들 빙그레가 전승 우승할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겼어요. 4승1패로요.”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입니다. “야구는 정말 알 수 없어요. 이제 우리 롯데에 ‘근성’이 생겼잖아요.”
근성. 지난해까지는 참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그가 은퇴한 2001년부터 ‘롯데에서 사라졌다’던 그 단어입니다.
“말도 마세요. 부담이 억수로 심했어요. 말은 쉽지만 진짜 ‘근성’이 뭔지 깨닫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어떻게 근성을 보여줘야 하는지도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올해는 다릅니다. 달라진 선수들의 눈빛에 하루하루가 흐뭇하기만 합니다. 왕년의 ‘0번’ 공필성이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을잔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산과 롯데의 진짜 가을이 포스트시즌과 함께 찾아옵니다. 딱 8년만입니다.
배영은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