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납상자속의심장

입력 2008-10-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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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사람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거미줄처럼 복잡다단한 바둑수들을 어쩌면 그리 척척 읽을 수 있을까. 하지만 솔직히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다. 뇌구조 보다는 심장의 구조이다. 프로들이라 해도 큰 승부에서는 떨린다. 머리는 ‘흔들리지 마라’고 연신 사이렌을 울려대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심장은 터질 듯 과격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피는 폭주족처럼 전신의 혈관을 타고 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들도 이럴 땐 손끝을 떤다. 눈앞에 아득해지면서 읽어야 할 수들이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정상의 기사들은 확실히 큰 승부에 강하다. 마치 납으로 된 상자 속에 심장을 넣어둔 모양이다. 그래서 이들은 큰 승부일수록 역전승이 많다. 잘 두어 가던 상대가 심장의 폭주를 견디지 못하고 자멸하는 경우다. 이창호가 한결같은 평정심을 유지한다면, 이세돌은 큰 승부일수록 독기를 뿜어내는 타입이다. 중요한 판일수록 그의 눈빛은 살기를 띄운다. 상대는 그 살기만으로도 가슴이 퍽퍽 막혀온다. <실전> 백1은 <해설1> 1로 밀어야 했다. 일단 흑이 받기 어렵다. 물론 백도 만만치 않다. 백으로선 좌상 방면으로부터 흘러나온 흑 대마를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흑도 살 수 있다고 자신할 만한 입장이 아니다. 어렵다. 하지만 백은 이렇게 두어야 했다. <실전> 백1로 백이 한 수 논 꼴이 됐다. 백9로는 <해설2> 1로 찔러 흑을 잡으러 가고 싶다. 하지만 늦었다. 이젠 흑을 잡을 수 없다. 결국 이 바둑은 하변의 흑이 살고, 설상가상 중앙 백 집이 검게 지워지면서 승부가 났다. 이세돌의 결선 진출. 길고 치열했던 본선리그의 마지막 승부였다. <209수, 흑 불계승>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글|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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