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다이어리]삼성선동열감독‘주니치의추억’

입력 2008-10-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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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호시노식마운드운용마법의투수교체‘청출어람’
‘역산(逆算)’이란 말이 있습니다. 일본의 전설적 투수 이나오 가즈히사의 볼 배합을 일컫는데 1구→2구→…→스터프(결정구)의 순서가 아니라 거꾸로(스터프→…→2구→1구) 구질과 코스를 정하는 패턴입니다. SK 김성근 감독도 언젠가 이런 배합을 강의한 적이 있는데 극히 동양적(혹은 일본적) 사고방식이랄 수 있죠. 타자가 누구든 투수 레퍼토리를 중시하는 미국식이 아닌 ‘상대 타자가 있고 그에 대응하는 투수가 있다’는 상대적 개념의 볼 배합이니까요. 역산의 개념을 확대하면 마운드 분업도 선발→불펜→마무리의 순이 아니라 마무리→불펜→선발의 순서로 비중이 찍히겠지요. 그 대표적 팀으로 선동열 감독의 삼성을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오승환이란 당대 최고의 마무리가 중심을 잡고, 정현욱-권혁-안지만 등이 필승 계투조를 구성합니다. 그 다음에 ‘고만고만한’ 5이닝짜리 선발들이 있죠. 이런 유형의 팀이 이기려면 구조적으로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에 명운이 걸려 있게 됩니다. 그런데 삼성의 올 시즌 데이터를 보면 5회까지 앞선 경기의 승률이 0.959입니다. 47승을 했고 딱 2번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2005년 선 감독 취임 이후 4년간을 통틀어도 5회 이후 역전패는 딱 12번인 반면 지키기 성공은 189승에 이릅니다. 대표팀 구성 때마다 괜히 선 감독이 투수코치로 지목되는 게 아니죠. 탁월한 투수교체 비법에 관해 언젠가 선 감독이 흘린 단서가 기억나네요. “투수는 나쁠 때가 아니라 좋을 때 바꿔줘야 된다.” 그래야 강판된 투수는 자신감을 이어갈 수 있고, 올라온 투수는 안정된 심리 상태에서 자기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이 말이 새삼 떠오른 장면은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때였습니다. 1-1로 맞선 3회말 2사 2·3루 위기서 선 감독은 2-1의 볼카운트에서 선발 에니스를 내리고 정현욱으로 바꿨습니다. 정현욱은 공 1개로 롯데 강민호를 삼진 처리했고, 3.1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이어 나온 권혁과 안지만도 주자(부담) 없는 상황에서 7회를 막았고, 8회부터는 오승환이 책임을 졌지요. 선 감독의 투수 운용은 1999년 주니치를 연상케 합니다. 당시 주니치는 선발진도 강했지만 이와세-오치아이-이상훈-선동열의 불펜진은 난공불락이었죠. 투수력 중시와 플래툰 시스템 선호, 카리스마적 통치술에 있어 선 감독 스타일은 호시노를 닮았습니다. 그러나 호시노는 1988년과 1999년(이상 주니치), 2003년(한신) 센트럴리그 우승은 해냈지만 정작 일본시리즈 우승은 내리 실패했죠. 베이징올림픽에서도 한국에 연패를 당했고요. 반면 선 감독은 2005-2006년 한국시리즈 연속우승을 해내 단기전 운영능력을 입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호시노를 수렁에 밀어넣은 두산 김경문 감독과의 플레이오프 대결로 스승의 대리전이 펼쳐진 셈인데 청출어람의 실력을 발휘할지 흥미롭습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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