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10년경호담당이털어놓는응원석천태만상

입력 2008-10-31 1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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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공항을 두고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희로애락의 모든 표정을 공항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장의 응원석도 비슷하다. 야구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든다. 지난 10년 간 잠실구장 응원석을 지킨 경호·안전업체 신화안전시스템 이강형 대표가 말하는 응원석 천태만상을 들어봤다. ●우린 소풍 왔다 잠실구장 내야 응원석 3층 상단 부에는 좌석 대신 빈 공간이 있다. 이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족발과 회를 먹으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일명 ‘소풍족’이다. 이들은 마치 유원지에 소풍을 나온 것처럼 음식과 술을 맘껏 즐긴다. 그 모습이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뭐하냐고 물으면 “소풍 나왔어요”라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알코올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면 걱정스럽다. 3층은 계단 각도가 가파르기 때문에 안전 상 위험해서다. 술을 너무 마시면 굴러 넘어질 수 있으니 신신당부 주의를 잊지 않는다. ●응원석에서 튀고 싶다 10년 사이 응원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90년 대 후반까지 소극적이었다면 2000년대 초중반에 들어서면서 팬클럽, 동호회 등을 표방하며 응원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소위 ‘튀는’ 사람도 많이 생겼다. 심지어 응원단장이 아닌데 마치 자신이 응원단장인 양 행동하는 사람까지 있다. 응원단상에 올라가 좌중을 압도하는 응원 퍼포먼스로 경기 전 바람몰이를 한다. ‘두산 댄스녀’도 이런 적극적인 응원 문화가 만든 단면이다. ●응원석의 글로벌화 야구장을 찾는 외국인 관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전에는 10여명에 불과했다면 최근에는 10배 이상 많은 외국인을 응원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라운드에는 용병, 응원석에는 외국인 관중, 야구장에도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있는 거다. 외국인이 늘면서 경호안전 요원들에게 긴장감도 생겼다. 언어 문제 때문이다. 분명히 아는 단어인 데도 외국인이 말을 걸면 얼어버린다. 영어 공부에 신경 쓰는 건 응원석의 변화가 가져온 달라진 모습이다. ●부산에서 잠실까지, 초등학생 마니아 부산에서 혼자 잠실구장으로 롯데의 원정 경기를 보러 정기적으로 오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그동안 응원석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팬이다. 응원석에 부모나 친구도 없이 혼자 앉아 있는 아이를 보고 걱정이 돼 가족 연락처를 물어보자 얘기하지 않았다. 이대호 사인볼을 받고서야 입을 연 아이의 부모에게 전화했더니 혼자 잠실구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연인 즉, 아이가 워낙 야구 광 팬이라 말려도 몰래 서울로 올라가자 아예 경기 스케줄에 맞춰 기차표와 야구 입장권을 끊어 보내준 것. 이 부모는 부산 역까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다시 부산 역에서 아이를 픽업했다. ●잡상인과의 전쟁 응원석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잡상인이다. 팬을 가장해 구장에 들어온 이들은 오징어, 소주, 담배 등을 팔며 경호안전 요원들과 쫓고 쫓기는 싸움을 벌인다. 몰래 들여오는 방법도 다양해 심지어 3루 쪽 전광판 콘솔박스에 물건을 미리 숨겨뒀다 다음날 경기에 팔기도 한다. ‘해태 아줌마’로 통하는 50대 아줌마는 가장 극성이다. 경기장 밖에서 담배를 팔다 경기가 시작되면 일반 응원석은 물로 지정석과 심지어 본부석에까지 들어와 담배를 판다. 아무리 막아도 막무가내다. 한번은 판매를 막자 상의를 벗어 이를 막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속옷을 선물로 주는 뜨거운 팬 응원은 응원석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다. 경기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선수 출입구 앞에서 기다리며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에게 ‘마무리 응원’을 하는 팬들이 있다. 스타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고, 사인이라도 한번 받으려는 팬들이 대부분이지만 이 가운데 정말 과감한 여성 팬도 있었다. 자신이 입던 속옷을 벗어 스타 선수의 손에 꼭 쥐어준 것.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 이 선수의 얼굴 표정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거란다. 옆에서 지켜본 이 대표의 얼굴도 화끈거렸기 때문이다. 잠실 |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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