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위풍당당홍성지

입력 2008-11-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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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행마는 변칙적이다. 상대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드는 행마이다. 좋은 전략이다. 일단 상대는 ‘도대체 왜 이렇게 두었을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국에서 시간은 돈이다. 수중에 돈이 다 떨어지면 반상의 우열과는 관계없이 게임이 종료된다. 속기시대의 도래는 ‘돈’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속기전에서 시간의 효율적인 활용은 수읽기 못지않은 주요한 기술이다. <실전> 흑1로 그냥 뛴 수가 이상했다. <해설1> 흑1로 날일자를 하나 던져둘 자리. 백이 2로 받으면 그때 3으로 달린다. 이게 물처럼 흐르는 수순이다. 역류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인생이든 바둑이든 순리를 거슬러 좋을 일은 많지 않다. 이세돌쯤 되면 없는 길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굳이 있는 길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실전>은 그냥 흑1로 가는 바람에 백2·4를 허용했다. 백의 자세가 위풍당당하다. 실수는 실수를 부른다. <실전> 흑5도 완착. <해설2> 흑1로 과감히 손을 돌려 지켜두는 것이 좋았다. 백2에는 흑3으로 늘어 그만이다. 한쪽이 이렇게 연이어 실수를 해주면 다른 한쪽은 기운이 난다. <실전> 백6으로 붙인 수가 절묘한 타이밍이다. 흑7로 늘 때 백8도 시원시원한 행마. 이 백6이 검토실로부터 두고두고 감탄을 낳았다. 이 바둑의 승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성지가 평온한 얼굴을 한 채 반상을 굽어보고 있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은 잊었다. 두려움을 버리면 제 기량이 살아난다. 백6·8을 본 이세돌의 얼굴은 조금씩 붉게 변한다. 이 즈음에서 흑1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후회를 길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타이머를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바둑판 위에 흉흉한 전운이 감돈다.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글|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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