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눈물과재기…배영200m정·슬·기

입력 2008-11-13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8월14일. 베이징 국가아쿠아틱센터. 그녀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누구 하나, 제대로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수에게 잔인한 질문을 해야 하는 직업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박태환(19·단국대)의 금메달이 나온 지, 나흘째 되던 날. 정슬기(20·연세대)는 평영200m 준결승에서 11위(2분26초83)에 머물며 결승진출이 좌절됐다. 예선기록(2분25초95)보다 나빴고, 자신의 한국기록(2분24초67)에도 크게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결승진출을 넘어 메달까지 바라봤기에 충격은 컸다. 이후 두 달 동안 정슬기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10월11일. 제89회 전국체전에서 정슬기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여자일반부 평영100m에서 1위(1분08초82). 10월13일 평영200m에서도 금메달(2분25초15)이었다. “런던올림픽을 다시 꿈꾸고 있다”는 정슬기를 만났다. 베이징의 아픔은 이제 훌훌 털어버린 듯했다. ○경쟁자 환호성 듣고 “나도 저렇게” 설움 북받쳐 8월3일. 베이징으로 향하는 기내. 약간은 긴장한 듯한 박태환과는 달리 정슬기의 표정은 밝았다. “감기와 설사의 고통은 있었지만 단잠에 날렸다”고 했다. 대표팀 우원기 코치는 50m헤엄 후 5초 휴식을 반복하며 200m를 완주하는 인터벌테스트에서 “(2분)20초대 기록이 나왔다“고 했다. 중간의 휴식시간을 감안하더라도 2분22초대 기록과 메달권이 가능한 수치. 하지만 결국, 그 감기와 설사가 발목을 잡았다. 먹기만 하면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실전을 앞둔 일주일 동안,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었다. 사실, 6월 괌 전지훈련 때부터 컨디션이 조금 떨어지긴 했다. 섭씨 35℃에 이르는 무더위에 지친 탓이다. 우직함은 몸을 더 망가뜨렸다. 열심히만 달려 온 정슬기는 “쉬고 싶다”는 말을 할 줄 몰랐다. 단 하루 운동을 걸렀지만 불안함에 다시 물 속으로 향했다. 정슬기는 “(박)태환이는 몸이 안 좋을 때는 과감하게 쉰다”면서 “실패를 계기로 몸 관리 요령은 꼭 배워야겠다”고 털어놓았다. 취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린 뒤, 정슬기는 보조풀(Pool)로 향했다. 어머니 신미숙씨와의 전화통화. “미안해, 엄마.” 잠시 그쳤던 눈물이 쏟아졌다. “(정)슬기야, 괜찮아. 네가 뭐가 미안하니…….” 참던 눈물은 아버지와 통화를 하며 다시 왈칵 터졌다. 순간, 경기장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보조풀에 달린 TV를 보니, 여자접영200m결승에서 류쯔거(19·중국)가 세계기록(2분04초18)을 작성하며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정슬기 역시 류쯔거처럼 국제무대에서는 이름값이 덜했다. ‘나도 저렇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는데…….’ 베갯맡에서면, 올림픽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쿵쾅대던 그녀였다. 아쉬움이 크기에 ‘다시 한 번 레이스를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법도 했다. 하지만 정슬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뛰어도 같은 기록에 머물 만큼 몸이 안 좋았다. 경기를 마친 동료들이 베이징 구경한다며 다닐 때도 정슬기는 선수촌에만 박혀 있었다. 결국 8월19일, 서울로 돌아왔다. ○실패를 딛고, 런던으로! “최대한 선수생활을 오래하고 싶다(스포츠동아 후즈 후 5월13일자)”고 했지만 워낙 큰 실망감이라 흔들리기도 했다. 정슬기에게 오기를 불어넣은 것은 레베카 소니(21·미국)의 여자평영200m 금메달이었다. 소니는 2년 전 심장수술을 받았지만 세계최강 레이즐 존스(23·호주)를 2위로 밀어내며 세계기록(2분20초22)을 작성했다. ‘심장수술을 받은 선수도 저런 경기를 펼칠 수 있는데, 건강한 내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방준영 전(前) 경영대표팀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 코치는 “다시 운동을 시작할 계획을 세워서 오라”고 했다. 정슬기는 귀국 후 딱 엿새를 쉬고, 8월25일부터 훈련을 재개했다. 방 코치는 기껏해야 아시안게임까지 운동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정슬기는 U대회(2009년)와 아시안게임(2010년)을 넘어 런던올림픽(2012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워낙 고독한 운동이라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과 ‘괴로운’ 몸의 불일치가 생기기도 했다. 대견한 제자를 위해 방 코치는 더 다그쳤다. 9월의 어느 날, 새벽훈련에서 잔뜩 혼이 난 정슬기는 오후훈련에 무단결석을 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천장을 바라봤다. 올림픽에서의 자신을 꿈꾸며 바라보던 그 천장이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은 혼미했던 정신을 싸악 씻었다. 그래, 가보자! 다음 날. 정슬기는 잘못했음에도 쭈뼛거리지 않았다. 제자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스승도 전 날 일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둘은 그렇게 다시 수영이야기를 시작했다. 준비기간이 50일도 채 안 된 전국체전. 독주한 레이스였지만 정슬기의 200m기록은 베이징올림픽 결승8위보다 나았다. “올해는 일단, 내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마무리한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4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서 실격 당한 후 탈의실에 숨어 눈물을 흘렸다는 박태환이 떠올랐다. 실패는 누구나 겪는다. 문제는 그것을 어떤 계기로 삼는가. 정슬기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발견함으로써 해야 할 것들을 찾았다. ⊙인어공주 다시 일어서기까지 8월3일 베이징으로 경기 앞두고 감기몸살 계속된 설사 실전 코앞…훈련 못하고 ‘전전긍긍’ 8월14일 운명의 준결승 평형 200m 2분24초67 11위 탈락 결승 좌절 참고 또 참던 눈물 터져 8월19일 서울로 흔한 쇼핑 한번 없이…선수촌 칩거 부둥켜안은 모녀 “미안해” “괜찮아” 8월25일 다시 날개짓 “그래 나에겐 ‘런던’이 있다” 오기 귀국 엿새째 기운차려 훈련 재개 10월13일 화려한 부활 전국체전 2관왕…베이징 아픔 훌훌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