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라이더’는잊었다…다시공을던지고싶을뿐”

입력 2008-11-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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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신인왕, 2004년 한국시리즈 MVP, 팀 6경기 연속 세이브 신기록(2003년 4월 24-4월30일), 시즌 개막 후 최소경기(12경기) 10세이브 돌파, 5차례 더블헤더 연속 세이브, 최소투구수 승리투수(2004년 10월 4일 수원 KIA전 1개)…. 이쯤 되면 대부분의 야구팬은 누구를 말하는지 짐작할 것이다. ‘조라이더’ 조용준(29) 얘기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데뷔 4년 만에 통산 115세이브(23구원승)를 올렸다. 웬만한 투수들의 직구보다 빠른 슬라이더를 구사하며 2000년대 초반 한국프로야구 최고 마무리투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05년 9월 오른쪽 어깨를 수술한다는 소식을 남긴 뒤 무대 뒤편으로 홀연히 사라진 그는 지금까지 마운드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러면서 그의 이름 석자는 팬들의 기억 속에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올 초 히어로즈와 연봉협상이 결렬된 뒤 ‘잠적’ 소문까지 나돌았던 그가 최근 팀에 복귀했다. 그동안 어디서 뭘 했을까, 재기는 가능한 것일까. 제주도 마무리훈련에서 재기의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조용준을 만나 솔직한 얘기들을 들어봤다. ○재활훈련 실패로 ‘태만’ 낙인 2005년 9월 16일 대구 삼성전. 그는 2.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5-3 승리를 마무리했다. 그것이 그의 통산 115세이브째였고, 마지막 등판이었다. 그리고 9월 22일 미국으로 날아가 어깨수술 전문의인 앤드루 박사의 집도로 오른쪽 어깨 관절순 수술을 했다. 그러나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수술 받은 정민태(현 히어로즈 투수코치)보다 재활 속도가 늦어지자 주위에서는 그를 두고 “태만하다”, “불성실하다”는 얘기가 잇따랐다. “재활에 성공했으면 열심히 했다고들 생각했겠죠. 처음 수술하고 2006년 3월, 4월까지는 열심히 재활훈련을 했어요. 인천구장에서 열린 2군경기였는데 구속이 135km 정도 나왔어요. (정)민태 형은 125km 나올 때였죠. 쌀쌀했는데 통증이 살짝 왔어요. 그래도 주위에서 기대하는 부분도 있고, 나도 무리해서 만들어보고 싶어 계속 참고 던졌죠. 그러다 ‘안되겠다’고 얘기했는데 트레이너는 바로 훈련 보고서에 ‘태만’이라고 적더라고요. 감독님한테 불려가 깨지고…. 그리고 2006년 5월부터 기분도 안좋고, ‘하면 뭐해 욕만 먹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훈련을 놔버렸어요.” ○연봉삭감 불만으로 팀 떠나지 않았다 그는 2008년 히어로즈가 제8구단으로 창단하면서 연봉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3월말부터 히어로즈 훈련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2008년 히어로즈가 제8구단으로 창단하면서 연봉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3월말부터 히어로즈 훈련장에 나오지 않았다. “전 당시 선수협회 구단대표였어요. 그래서 마지막까지 버틴 것이었죠. 선수협 차원에서 소송을 건다니까 기다려야하는 상황이었고. 그런데 구단에서 ‘계약이 안된 선수는 훈련하지 마라’고 하는데 어떡합니까. 내 입장에서는 정말 중요한 시기였는데…. 갈 데가 없었죠. 당시 솔직히 열 받아서 ‘안나갈게요’라고 말해버렸어요.” 주위에서는 그를 두고 술 잘 마시고, 노는 걸 좋아하는 선수라고 얘기한다. 이에 대해 그는 “솔직히 노는 거 좋아해요”라고 동의하면서 술은 잘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문득 찾아온 자각 “나, 야구선수 맞지?” 팬들의 기억 속에 그의 이름은 서서히 잊혀져갔고, 얼굴도 잊혀져갔다. 한때 ‘소방수’하면 ‘조용준’의 이름을 떠올리던 팬들도 이제는 ‘오승환’으로 대체하고 있다. “사람들이 몰라보기 시작하니까 솔직히 편했어요. 주위 시선 의식하지 않고 해보고 싶었던 것 실컷 해봤어요. 여행도 다녀오고, 친구도 만나고…. 은퇴도 심각하게 생각했고, 친구들과 사업구상까지 했죠. 2-3억으로 뭘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얘기였지만….” 그러나 그 생활도 한두달 지나면서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친구들하고 놀다가도 문득 ‘나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제가 팬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니까 미니홈피에 악플이 없어져 좋더라고요. 가끔씩 들어가 보면 이제 글도 한두 줄밖에 없어요. 그런데 일부팬들이 ‘조용준 던지는 거 보고 싶다’, ‘다시 돌아와달라’라는 글을 올리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그래 나 야구선수 맞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2004년 한국시리즈 비오는 날 잘했는데, 난 야구선수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야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어요. 스스로에게 약속했죠. ‘한번 해보자, 더 이상 내려갈 게 뭐있냐. 마운드에서 던지는 거 꼭 한번 보여주자. 팬들도 나도 원하는 거니까’라고.” ○미국행은 마지막 탈출구 연봉계약이 체결되지 않아 히어로즈 훈련장에서 나와야했던 그는 5월 미국 미시시피로 날아갔다. 미국에서 한달 정도 재활훈련을 해보고 안되면 미련없이 야구를 접는다는 생각이었다. “하루 2-3시간 훈련에 매달렸어요. 한국에서는 계속 2-3kg짜리 기구를 들고 재활했는데 거기서는 ‘그러면 근력을 키울 수 없다’며 12kg짜리로 훈련을 시키더라고요. 재활훈련 한 달 만에 공이 20-30m 쭉쭉 날아가더라고요. 속으로 ‘이거 봐라’하면서 저도 놀랐죠. 한국에서는 아팠는데 아프지도 않더라고요. 귀국하기 전 100m 롱토스를 해도 괜찮더라고요.” ○잘하다 빨리가는 선수보다 꾸준한 선수 되고 싶어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 장대비를 맞고 공을 던지던 그 모습은 아직도 팬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키 176cm에 몸무게 72kg. 가냘픈 체격이지만 눌러 쓴 모자 밑으로 번뜩이던 독사눈, 어떤 타자가 등장하더라도 싸움닭처럼 정면승부를 벌이던 승부근성…. ‘조라이더’를 기억하는 팬들은 그의 부활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최고 마무리? 그렇게 오버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잘하다 빨리 가는 선수’보다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 다시 공을 잡았지만 사실 재미있는 건 모르겠어요. 그저 ‘야구를 해야 하는구나, 아직 접을 때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뿐이죠.” 제주 마무리훈련에서 그는 불펜피칭까지 소화했다. “일단 내년 스프링캠프에서 100% 공을 던질 수 있도록 해야죠. 내년엔 성적보다 아프지 않고 한 시즌을 소화하는 게 목표에요. 구질, 구속, 감각을 점검하고 후반기 정도에는 어느 정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몸상태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다음 시즌에 승부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제주|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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