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천재’이종범의현역연장이소중한이유

입력 2008-12-30 16: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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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천재’ 이종범(38.KIA)이 내년에도 현역으로 그라운드를 누빈다. KIA와 이종범이 현역 연장에 합의함에 따라 타이거즈팬들은 2009시즌에도 레전드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는 가슴 벅찬 응원을 펼칠 수 있게 됐다. 1970년생, 즉 우리나이로 40살인 이종범의 선수 생활 연장은 한국프로야구사에 한 페이지를 남길만한 일이다. 단순히 베테랑 선수가 1년 더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이종범은 야구선수가 아닌 한국야구 올타임 No.1 ‘5툴-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5툴-플레이어란 야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항목인 타격(Hitting for Average), 파워(Hitting for Power), 수비 (Fielding), 강한 어깨(Arm Strong), 베이스런닝 능력(Running Speed)에 모두 능한 선수를 말한다. 여러 재능을 갖고 있는 이들은 경기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만큼 플레이가 화려하다. 하지만 많은 재능은 선수생활을 단축시키는 어두운 그림자를 함께 만들어낸다. 가진 재능이 많다는 것은 해야 될 일이 많음을 의미한다. 투수에게만 혹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야수에게도 혹사는 존재하며 공격, 수비, 주루에서 쉼 없이 움직여야 하는 5툴-플레이어들은 혹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5툴-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공,수,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선수들의 은퇴시기를 살펴보면 이들이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LG를 대표하는 스타였던 유지현(유격수)은 30대 중반이 되기 전에 그라운드를 떠났다. 은퇴과정에서 여러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분명한 것은 30에 접어들며 잦은 부상과 급격한 기량 쇠퇴가 엿보였다는 것이다. 잠실의 또 다른 유격수였던 김민호(현 두산코치)도 30대 초반에 선수생활을 마감했으며, 프로야구의 모든 기록을 갈아 치울 것만 같았던 홍현우(2,3루수) 역시 30대 들어 기량이 급감하다 그라운드를 떠났다. 삼성의 ‘명품’ 키스톤 콤비였던 류중일(유격수)과 강기웅(2루수)도 30대 후반까지 선수생활을 잇지 못했다. 특히 강기웅은 30이라는 젊은 나이에 유니폼을 벗었다. 트레이드 불응이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앞선 3년 동안 보여준 암울한 성적표와 계속된 부상도 은퇴시기를 앞당기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타격왕 출신인 이정훈을 비롯해 박노준(SBS 야구해설위원), 박종훈(현 두산 2군 감독) 등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퇴를 했다. 현역 선수중에는 박종호, 강동우 등의 기량이 나이가 들며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격수로 자리매김한 박진만 역시 계속된 국내외 대회 출전으로 수비범위가 좁아지고 있고 기량 쇠퇴의 기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의 예를 든다면, 역대 최고의 2루수로 평가 받는 로베르토 알로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떠나면서 자신의 페이스를 잃었다. 이 때가 30대 중반을 향하던 시점. 3000안타를 눈앞에 뒀던 알로마는 결국 2004년 은퇴를 선언했다. 보스턴 시절 유격수 3인방에 포함됐던 노마 가르시아파라도 30을 넘어서면서 부상과 부진의 아픔을 겪고 있다. 1990년대 마이클 조던과 맞먹는 인기를 누렸던 켄 그리피 주니어도 30대에 접어든 뒤 잦은 부상으로 모든 기록이 감소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수비의 중심인 미들라인(포수, 유격수, 2루수, 중견수) 필드플레이어인 동시에 공,수,주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던 선수라는 것. 쉴 틈 없이 팀에 기여하는 호타준족형 선수들이 30대 들어 성적이 추락하고, 30대 중반에 은퇴를 하는 것이 당연할 일처럼 돼버렸다. 반면 커리어 내내 수비 부담이 없고 주루에서도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는 슬러거들의 경우 지명타자나 1루수로 뛰며 오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이 포지션에서도 성적이 추락하면 방출이라는 ‘된서리’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안드레스 갈라라가, 에드가 마르티네스, 프레드 맥그리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공격력이 뛰어난 거포라면 기량이 순식간에 떨어지지 않는 이상 40이 넘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보내며 엄청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는 프랭크 토마스와 40을 향하고 있는 짐 토미, 제이슨 지암비도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다시 이종범으로 돌아오면, 이종범은 전성기를 수비부담이 많은 유격수 포지션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는 루상에서는 가장 많은 도루를 성공시킨 적극적인 주자였다. 국내 복귀 후 외야수로 포지션을 옮겼는데 그 자리도 미들라인인 중견수 위치였으며, 그의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는 변한 것이 없었다. 30대 후반 들어 코너외야인 우익수를 맡고 있고, 지난 시즌에는 파트타임 1루수로 나서기도 했지만 아직도 이종범에게선 ‘호타준족’, ‘올어라운드플레이어’,’만능선수’라는 이미지가 묻어난다. 그의 현역 연장은 미들라인 필드 플레이어들가 오랫동안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내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그의 계속된 선수생활은 단명하고 있는 많은 호타준족형 선수들과 테이블세터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 부자가 그랬던 것처럼 이종범과 그의 아들 정후가 함께 그라운드에서 뛰는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임동훈 기자 arod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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