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성“광현·현진일본에통한다”

입력 2009-01-19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한국야구는 ‘거룩한 계보’를 갖고 있다. 1970년대 이선희(현 삼성 스카우트)를 필두로 이후 80년대 김기범(은퇴)-90년대 구대성(40·한화)이 ‘일본은 왼손이 책임진다’란 명맥을 이었다. 구대성이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과 2006년 제1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을 선사하고 물러나자 김광현(21·SK)이 2007년 코나미컵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등장했다. ○시드니의 추억과 베이징의 데자뷰 구대성은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일본전) 전날 김인식 당시 투수코치(현 WBC감독)에게 “어깨에 담이 걸려서 등판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자고 일어나니 다소 괜찮아 ‘구원은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덜컥 선발이었다. 초반엔 몸을 염려해 살살 던졌는데 점점 몸이 풀렸다. 그렇게 158구를 던졌고, 완투까지 갔다. 당시 구대성을 움직인 동력은 후배들이었다. 병역혜택이 걸린 단판승부인지라 정수근을 비롯한 당시 군 미필 선수 예닐곱은 “형, 이 경기만 이겨주면 1인당 3000달러씩 모아서 드릴게요”라고 애절한 눈망울로 애원했단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그로부터 8년 후, 올림픽 준결승전(일본전)을 앞둔 김광현도 똑같은 간절함과 직면했다. “내 생애 그렇게 긴장된 경기는 처음이었다. 군 미필 선배들이 전부 모여 ‘광현아, 이 경기 하나만 이겨주라’고 하는데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떠올렸다. 이제 한국야구사는 2009년 WBC에서 3번째 반복을 기다리고 있다. ○구대성의 장담, “하던 대로만 던져라” 구대성은 뉴욕 메츠에서 한국 복귀를 결정짓고 바로 1회 WBC에 참가했다.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야구선수로서 국가대표로 뽑혀서 마냥 좋았단다. 그리고 한국은 구대성이 부상 탓에 못 던진 4강전을 빼고 예선과 8강리그전에서 일본을 연파했다. 이번 WBC 대표팀엔 인센티브가 약하다는 지적에 대해 구대성은 짧지만 강렬한 해법을 내놓았다. 자기 능력을 믿는 마음과 선택받은 자의 책임감이다. “일본(오릭스)에서 던져본 내가 보증한다. 김광현과 류현진(22·한화)은 지금 구위만으로도 일본에서 통한다. 그러니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태극마크의 가치를 되새겨라.” ○한국 좌완, 일본의 영원한 콤플렉스 노장년층에게 일본은 따라잡아야 할 목표였다. ‘일본엔 안돼’란 열등감 혹은 동경에 시달렸다. 야구도 그랬다. ‘한수 배우는 자세’로 늘 숙이고 들어갔다. 386세대에게 일본-미국은 극복 대상이었다. 투쟁심이 바닥에 깔려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는 일본이라고 움츠리지도, 증오하지도 않는다. 한일전은 꼭 이겨야 할 게임일 뿐이고, 자기 페이스대로 즐긴다. 그 단초는 구대성이었고, 김광현-류현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오히려 콤플렉스는 일본의 몫이다. 구대성이 살아있는 증거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