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피플]이승호사장,와인과그림에미쳤어요

입력 2009-02-11 09: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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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투어를 가면 많은 사람들이 지식적인 것에 치중해요. 하지만 난 와이너리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마시다 보니 항상 만취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늘 홍삼과 숙취 해소약을 준비해 돌아다녔어요.” 홍대 앞에서 와인바 ‘와이너리’를 하고 있는 이승호(45) 사장의 본업은 화가다. 홍대 서양화과 출신으로 개인전을 5차례 열었고, 올 여름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여섯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그림만큼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와인이다. 주당을 자처하는 그는 와인에 푹 빠져 지금까지 전 세계를 돌며 400여개의 와이너리를 돌아 다녔다. 와인을 좋아하는 보통 사람들은 몇 차례 가기 힘든 와이너리 투어를 그는 정말 줄기차게 했다. 고위 공무원직에 있는 아버지를 두고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돈으로만 할 수 일은 아니었다. 열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와인에 대한 두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포도주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집에 어머니가 담가둔 포도주를 몰래 마셨어요. 노곤노곤 해졌죠. 두 번째 기억은 20대 초반 이탈리아, 스페인 등 외국에서 일하는 선배의 작업실에서 일을 도와줄 때입니다. 소주가 1,2만원이나 한데 반해 와인은 1000원,2000원 주면 됐어요. 3000원이면 꽤 좋은 와인을 마실 수 있었죠. 이게 와인을 마시는 인연이 됐어요.” 이후 그는 와인을 해외에 나갈 때 마다 사들이기 시작했다. 와인의 맛을 알아서라기보다 왕성한 음주 욕구와 저렴한 와인의 상관관계가 들어맞아서다. 이러면서 자연스레 집에 와인이 쌓이기 시작했다. 와인을 마신 양으로만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많이 마셨다고 자신한다. 하긴 25년이 넘게 와인을 마시고, 일 년에도 많게는 6~8차례씩 와이너리 투어를 떠난다니 일견 납득이 간다. 예술가라는 기질과 선천적인 방랑벽 때문에 자주 여행을 하던 그는 어느덧 와인을 마시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었고, 급기야 2003년 ‘와이너리’를 오픈하기에 이른다. “2003년 홍대에 2층짜리 개인 주택이 세로 나와 그림쟁이들끼리 모아 작업실로 구했어요. 2층은 제가 쓰고, 1층에는 그림쟁이는 물론이고 연극, 뮤지컬, 가수, 오페라 등 수 많은 사람들이 놀러와 술을 마시고 갔어요. 술이 떨어지면 2층에 올라와 제 와인을 빼 마시는 일도 빈번해졌고요. 마광수, 한대수, 박혜미, 한동준 씨 등이 다 그 때 자주 오던 사람들이죠.” 와이너리를 처음 찾은 사람들은 이 곳의 특이한 인테리어와 외관에 반한다. 원래 마당이 넓게 있던 단독주택에 바닥을 깔고, 비가 오니까 천정을 막고, 추우니까 벽을 막는 등 필요에 따른 작업을 거쳐 현재 모습에 이르렀지만 ‘정크 아트’의 풍미가 색다르면서 재미를 준다. 이런 분위기가 와인의 맛을 살리는데 일조하는 것일까. “목수하고 저하고 하나씩 만들었어요. 프로들이 한 것 보다는 엉성하지만 인간적이 맛이 있죠. 홍대에 본점 말고 3호점도 있는데 그 곳은 내부 공간을 모두 와인 박스로 했어요. 박스만 1000개를 일일이 잘라 붙였는데 정말 피와 땀과 눈물이 들어갔죠. 하고서는 몸살이 났을 정도니까요.” 그는 와인 리스트를 따로 비치하지 않는다. 대신 와인을 보고 손님이 직접 고를 수 있게 셀러를 비치했다. 처음 150종을 비치해 시작한 와인은 5년이 지난 현재 1000종을 넘게 갖췄다. 기본적으로 500~700종의 와인을 비치하고, 매달 40여종의 와인을 교체한다. 와인 값도 ‘착하다’. 그림쟁이 친구들이 와서 마시는 곳이라 비싸게 받지 않는단다. 그 결과 홍대에서 와인을 싸게 팔고, 좋은 와인을 찾아 계속 로테이션 시키는 곳으로 소문나 호텔이나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소믈리에를 단골손님으로 확보했다. “누구나 가게를 하는 사람이라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죠. 저도 (그림에서) 내면의 엑기스를 만들어 표현하려면 기본적인 ‘총알’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돈을 남기려고 하는 것보다는 가게가 돌아가고, 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물감 값만 벌 수 있으면 만족해요. 전 와인을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거죠. 기분이 좋으면 몇 팀이 그날 산 것보다 더 좋은 와인을 내놓기도 하고요.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어려운 때 가능하면 와인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손님들이 더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가 와인을 고르는 기준은 가격 대비 퀄리티다. 보통 사람들이 고가 와인을 마시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1주일에 샘플 와인이 적게는 10종, 많게는 40종까지 들어오는데 일일이 테이스팅하고 가격 대비 우수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주문해 들여놓는다. 두 번째는 나라별 다양성이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와인을 선호하지만 자신의 취향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나라의 와인을 골고루 갖춰놓는다. 뿐만 아니라 좋은 날 좋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어 돈에 여유가 없어도 고가 와인도 틈틈이 사는 것을 잊지 않는다. “풀바디에 알코올은 14도 이상, 탄닌도 많고, 묵직하고 거친 느낌, 강건한 느낌의 와인이 좋다”고 말하는 이승호 사장. 죽을 때 까지 와인 여행을 할 것 같다는 그는 오늘도 좋은 와인을 찾아 와인을 듬뿍 채운 잔을 돌리고 있다. 글·사진=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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