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탈출의감동그대로-예술의전당피가로의결혼

입력 2009-02-13 09: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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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의 운동장에서 잿빛 죄수복을 입은 죄수들이 생기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하는 사람, 끼리끼리 모여 무언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텅 빈 시선을 허공에 던지고 있는 사람. 제각기 자신의 일을 하고 있지만, 형용하기 힘든 공허함이 이들을 꿰뚫고 있다. 그런데 낡은 확성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두 여자의 목소리. 노래는 호수의 물결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번진다. 확성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사람들의 눈에 생기가 돈다. 혹독하고 잔인한 교도소장이 가장 혐오하는 그것은 희망이란 이름의,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화해의 메시지였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이 씬에 등장하는 음악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3막에 나오는 아리아 ‘포근한 산들바람아~’이다. 백작부인이 불러주는 편지를 하녀 수잔나가 한 구절씩 따라 부르며 받아 적는 장면으로 제목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운 여성2중창이다. 일명 ‘편지2중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년에 걸쳐 리노베이션을 마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재개관 축하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지난 200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신작이다. 예술의전당이 이 작품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는 출연진만 봐도 ‘한 귀’에 알 수 있다. 한국이 자랑해 마지않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신영옥(수잔나)을 비롯해 미국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한국인 바리톤으로는 최초로 주역을 따낸 윤형(알마비바 백작), 미국 오페라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소프라노 새라 자크비악(백작부인) 등이 줄줄이 무대에 선다. 메조소프라노가 남장을 하고 맡는 것이 관례였던 케루비노 역에 카운터테너 이동규를 기용한 것 또한 신선하기 그지없다. 마르첼리나는 ‘카르멘 전담’으로 통하는 메조소프라노 김현주가, 국내 베이스 ‘대표선수’ 중 한 명인 함석헌이 바르톨로를 맡는다. 오케스트라는 이온 마린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도 함께 한다. 연출가 데이비드 맥비커의 이름도 눈에 확 들어온다. 파격적인 연출로 보수적인 영국 오페라계에서 ‘악동’ 취급을 받았던 그는 수년 전부터 ‘앙팡테리블’로 불리며 젊은 연출가로서의 명성을 빠르게 쌓아가고 있다. 맥비커의 장기는 오페라를 단순히 음악극이 아닌, 한 편의 드라마로 구성하는 데 있다. 200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된 ‘맥비커 버전’의 피가로의 결혼은 언론과 평단의 호평, 폭발적인 관객의 찬사 속에 대성공을 거뒀고, 결국 지난해 재공연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DVD로 발매되는 등 검증된 명품 피가로의 결혼이다. 새로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만난다는 점도 설렌다. 2007년 화재로 소실된 무대를 복구하고 노후한 객석을 전면 교체했다. 기존의 시야 방해석을 없애고, 객석을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했다. 오케스트라 피트를 확장해 오케스트라의 편성이 한결 자유로워짐으로써 더욱 풍부한 음향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음향반사벽을 설치하고 벽 마감재도 천에서 나무로 교체해 잔향시간과 음의 선명도를 개선했다. 다시 태어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나게 될 21세기판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과연 쇼생크 탈출 속 죄수들이 느꼈던 그 감동을 이 참에 우리도 만나 볼 수 있을까. 희망이란 이름으로, 우리들은 세상 모든 것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 공연: 3월6일(금)·8일(일)·10일(화)·12일(목)·14일(토) 7시30분(일요일은 3시)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문의: 02-580-1300 4만원~20만원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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