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가간다]“기자님부터치료를…”부도난재활공장

입력 2009-02-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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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재활코치체험
《하와이의 따가운 햇살 속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꿈이 영그는 지금. 문학구장의 차디찬 그라운드를 뜨거운 함성소리로 녹이는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한 때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일군 SK 와이번스의 주역이었지만, 현재는 부상으로 SK의 일본캠프에서 제외돼 있다. 김성근(67) 감독의 간택을 기다리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선수들. 그들의 지친 몸과 마음은 SK재활군의 이병국(29) 코치가 어루만진다. SK의 재활시스템은 8개 구단 가운데 최고다. 2007년에는 송은범(25)과 채병룡(27)이라는 성공사례를 만들어냈고, 2008년에는 이승호(28)가 날았다. 엄정욱(28)은 벌써부터 시속 145km의 강속구를 뽐내며 2009년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때로는 트레이닝코치, 때로는 기술코치, 거기에 카운슬러 역할까지. 1인 다(多)역 재활코치의 애환을 엿보기 위해 23일, 문학구장을 찾았다.》 ○“운동 싫어하죠?” 오전 9시. SK의 첫 출근자는 이병국 코치. SK는 정경배(35·어깨), 이재원(21·팔꿈치), 윤길현(26·무릎), 손지환(31·발목)과 김강민(27·손등) 등 최근 석 달 사이 5명의 선수가 수술대에 올랐다. 이외에도 조웅천(38) 등 총 12명의 선수들이 재활군에 머물고 있다. “자, 일단 유니폼부터 입으세요.” 이제 재활군의 일원. 훈련 프로그램은 선수들 몸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르다. 이 코치는 전날의 훈련 경과를 확인하고, 개별 프로그램을 짜는 것으로 첫 업무를 시작한다. 10시. 훈련의 시작은 스트레칭. “스트레칭 때 코치가 뒷짐이나 지고 설렁설렁하면 선수들이 열심히 하겠어요?” 코치는, 최소한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평소에 운동 싫어했죠?” 딱딱한 몸놀림을 지켜보던 정경배의 일침. ○대화도 재활훈련의 한 부분 유연성은 나이와 상관이 없었다. 30대 후반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조웅천과 정경배의 스트레칭은 거의 요가수준. “유연하면 뭐해요. 지금은 여기에 있는데…….” 농담 속에 서린 날에 살짝 마음을 베었다. “재활에서는 심리적인 부분을 컨트롤 하는 것이 제일 힘들어요. 지루한 훈련의 반복인데다 선수들은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거든요. 특히, SK처럼 경쟁이 치열한 팀이라면 위기감은 더 커지죠. 우선 선수들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 코치는 전문적인 조언보다는 선수들과 친해지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스트레칭 사이 대화도 양념. 훈련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끄는 것도 코치의 역할이다. 선수들의 주된 관심사는 하와이와 일본 캠프에서 들려오는 소식. ‘이대호가 하와이까지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다니 얼마나 불편하겠냐’는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표면상으로는 동료에 대한 걱정. 하지만 이면에는 정상적인 몸으로, 따사로운 햇살아래 겨울을 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스킨십 웨이트트레이닝 스트레칭과 웜업(Warm-up)을 마친 뒤에는 인터벌트레이닝, 사이클, 러닝, 캐치볼 등 각자의 훈련프로그램 장소로 해산. 이 코치는 물리치료실에 자리를 잡았다. 선수들은 개별프로그램을 소화하다 순번에 따라 물리치료실에서 PNF(고유수용감각촉진법)를 받는다.PNF은 일종의 ‘스킨십 웨이트트레이닝’이다. 이 코치가 직접 손으로 부상부위를 눌러가며 체중을 싣고, 선수들은 이 코치의 손을 기구삼아 부상부위의 근력을 키운다. 선수들이 피로를 느끼는 상황에 따라 매 회수, 무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선수들과의 교감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첫 손님(?)은 조웅천. 얼굴을 찌푸려가며 이 코치와 씨름을 한다. “재활훈련 취재 온 건 처음 봐요. 카메라 플래시 터지니까 집중력이 생겨 부네. 이렇게 (취재진이) 매일 오면 시범경기 투입인데….” 조웅천의 넉살에 이 코치가 뒤집어졌다. 조웅천은 투수 통산 최다출장경기(808)기록 보유자. 이 코치가 “빨리 나아서 1000경기 출장을 하시라”며 다독이자 조웅천이 힘을 낸다. 정경배의 PNF 차례. 어깨에 손을 댔더니, 웬만한 사람의 허벅지를 만지는 느낌이다. “정말, 운동 싫어하시는 거 맞네. 제가 어깨를 올리는 순간에는 힘을 실어야 운동이 되죠.” 두 번째 구박. 하지만 티격태격하면서 어느 새 정이 들었다. 정경배는 “2-3년이나 이런 시간을 견뎌낸 (이)승호나 (엄)정욱이는 정말 대단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쌀독을 헤집고 웨이트트레이닝장 한 편 큰 바구니 안에는 쌀이 가득하다. 윤길현이 쌀독으로 다가서더니 난데없이 쌀을 헤집는다. 악력 강화훈련이다. 윤길현은 “매일 매일 쌀을 씻으시는 어머니들은 악력도 엄청나실 것”이라며 웃었다. 악력강화에는 미압(米壓) 대신 수압(水壓)을 활용하기도 한다. 몇 몇 선수들은 훈련을 마친 뒤, 사우나로 향했다. 한편에서는 ‘좌완킬러’ 이재원이 사이클 페달을 밟고 있었다. 이재원은 프로데뷔 후 2년간 팔꿈치 통증을 안고 뛰었다. 대타요원으로는 만점이었지만 수비가 발목을 잡았다. 주전을 꿰차고 싶은 마음에 몸에 칼을 댔다. “거울을 보고 있으면, 내가 뭐하나 싶어요. 그래도 주전의 꿈이 있으니까. 저 오른손 투수 공도 잘 쳐요.” 이재원은 2달 만에 12kg을 뺏다. 체지방이 줄어들수록 그의 꿈은 커진다. ○“우리, 이제 절대 보지 말자.” 저녁 6시 반. 겨울의 어둠이 한 발 앞서 깔린 인천 문학구장. 하지만 이 코치의 방은 환했다. 선수들의 훈련 경과에 대한 보고서 작성 때문이다. 보고서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 중인 홍남일, 강성인, 이홍범 1군 트레이닝 코치들을 거쳐 김성근 감독에게까지 보고 된다. “선수들이 (재활군에서) 나갈 때 항상 그래요. ‘앞으로 절대 보지 말자’고. AS센터에 다시 오면 안 되잖아요? 작년에 (이)승호가 한국시리즈에서 던지는 거 보고 얼마나 뭉클했는지. SK에서 일한 3년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을 2번이나 했으니 저는 참 복도 많습니다.” 안면근육의 미세한 떨림들. 찌푸린 미간. 약간 벌어진 입. 굳게 다문 입술. 선수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 코치와 다시는 만나지 않기 위해, SK선수들은 오늘도 이 코치와 살을 맞댄다. 문학|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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