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트렌드]꼬르륵!…한국영화밥차없이못산다

입력 2009-03-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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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촬영장의 ‘밥차를 아시나요?’ 2000년 들어 한국영화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쉬리’가 국내 첫 대형영화 성공시대를 열었고 한 극장에 상영관이 여러 개인 멀티플렉스라는 것도 생겼다. 하지만 이 때, 관객은 물론 제작현장에서 뛰는 스태프들도 잘 모르는 혁명적인(?) 변화가 또 있었다. 바로 ‘밥차’의 등장. 밥차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연기자와 스태프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이동식 조리차량을 말한다. 밥차없는 영화 촬영은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밥차는 영화 촬영장의 중요한 아이콘이다. 심지어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크래딧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로 밥차는 제작의 중요한 한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 ○밥차의 역사 영화 촬영현장 어디서나 만날 수 있게 된 밥차. 하지만 밥차가 언제부터 우리영화의 배고픔을 해결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화 관계자들에게 수소문을 해도 “2000년이나 2001년 쯤 같은데...밥차가 생겨서 참 좋다는 기억은 나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밥차가 생겼는지는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던 중 ‘여고괴담5’촬영이 진행중인 전주에서 ‘충무로 맏형’으로 불리는 영화사 씨네2000 이춘연 대표로부터 정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합니다. 1999년이었어요. 그 전에는 중국집에 배달시키거나 도시락 가져다 먹고 그랬지.” 이춘연 대표가 밝힌 밥차의 탄생, 시작은 포장마차였다. “양수리 종합촬영소가 아직 완성되기 전이었는데...그곳에서 ‘학교전설’(개그맨 신동엽 주연의 공포영화)이라는 영화가 촬영됐는데 배경이 포장마차인 신이 있었어요. ‘소품용으로 하나 만드느니 진짜를 하나 빌리자.’ 그래서 장사하던 포장마차를 섭외했죠. 그런데 촬영 중간 우동도 먹고, 촬영 끝난 후에 뒤풀이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야. 이거 좋다. 아에 촬영장에 상주시키자’ 그랬죠“ 이후 촬영장 포장마차는 인기 폭발이었다. 영화촬영장마다 너도 나도 포장마차를 섭외했다. 촬영장 포장마차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변신의 변신,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 밥차로 진화했다. ○밥차 넌 누구냐? 포장마차에서 한식, 일식, 중식까지 단 번에 100인 분 이상 만들 수 있는 맛 집으로 진화한 밥차. 한 때 20여개 업체까지 늘었지만 최근 15개 업체가 성행중이다. 그중 ‘괴물’ 현장을 맡았던 사계절, ‘태극기 휘날리며’의 시네마밥차 등이 대표 업체다. 밥차는 대부분 기동성이 좋고 산길이나 좁은 골목길도 문제없는 1.5톤 탑차를 개조해 운영한다. 밥차 내부는 LPG가스가 연결된 5개 화구, 추가 설치가 가능한 1개 보조 화구로 이뤄졌다. 화물칸의 한쪽 덮개를 올려 배식을 하는 구조를 갖췄다. 좁은 내부지만 한 번에 200인분을 조리할 수 있는 식기와 조리기구, 식재료를 보관할 수 있다. 밥차는 대부분 조리사 자격증을 소지한 부부나 친척 등 가족이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식요리사 출신 사계절 밥차 김태완 사장은 “장기간 야외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가족이 운영한다. “며 ”소문이 나야 계속 불러주는 곳이 있기 때문에 음식 맛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고 말했다. 맛과 함께 밥차의 경쟁력은 바로 정성이다. 한 프로듀서는 “제작사들에게 인기가 높은 손에 꼽히는 밥차들은 다르다. 맛도 중요하지만 길게는 밤새며 이틀까지 계속되는 영화 촬영을 기다릴 수 있는 참을성, 극도로 예민해진 배우, 스태프를 다독여 줄 수 있는 여유와 인품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밥차의 경쟁력 생각해보면 밥차의 경쟁상대는 무수히 많다. 우리나라의 중국집과 분식집 등 외식업체들을 세계 최고 수준의 배달능력을 자랑한다. 특히 최근에는 도시락집도 많다. 하지만 한 제작부 스태프는 “스태프들에게 도시락으로 2끼만 연속해서 주면 바로 욕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중국집? 피자? 뭐니 뭐니 해도 따뜻한 밥과 국이 있는 밥차가 최고다“ 밥차의 매력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위해 찾은 전주종합촬영소의 ‘여고괴담5’ 촬영현장. 이날 점심은 된장국과 밥, 김치와 김이 기본. 돼지고기 제육볶음이 이날의 메인 메뉴. 그리고 멸치조림, 장조림, 송이버섯볶음이 반찬으로 나왔다. 후식은 딸기였다. ‘여고괴담5’ 현장을 맡은 밥차 사계절은 낮 12시에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대기했다. 오전 촬영이 끝난 시간은 12시30분. 약 70여명의 촬영진은 1분도 기다리지 않고 따뜻한 밥과 국, 제육볶음을 먹을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지 원하는 시간에 따뜻하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밥차의 큰 매력이다. 스케줄이 늘 유동적인 영화촬영 현장에 이보다 좋은 안성맞춤이 없다. 밥차의 1인당 한 끼 식대는 4000원. 제작사 입장에서도 더 싼 가격에 훌륭한 식단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이동할 필요 없이 현장에서 바로 세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시간이 곧 돈인 영화제작에서 비용 절감 효과가 엄청나다. ○막내 스태프부터 톱스타까지...밥차 앞에선 모두 평등 밥차의 또 다른 특징은 배식할 때 모두 평등하다는 원칙이다. 주연을 맡은 톱스타든, 이제 막 현장에 입문한 막내 스태프든지 모두 줄을 서 같은 음식을 직접 가져다 먹는다. 식단도 주인공이 아닌 아닌 철저히 현장 스태프 위주다. 사계절 김태완 사장은 “스태프들이 힘을 많이 쓰기 때문에 육류를 항상 준비한다. 솔직히 주인공들은 스태프보다 돈이 많으니까 밖에서 사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태프들은 시간도 빠듯하기 때문에 잘 챙겨줘야 한다”며 웃었다. 가끔 예외는 있다. 채식주의자나 특정 음식을 못 먹은 배우를 위해 다른 반찬을 준비하기도 하고 그날 가장 고생한 스태프를 위해 특별반찬을 준비하기도 한다. 9일 ‘여고괴담5’ 촬영장에서도 배식이 모두 끝난 후 달걀 프라이 10개를 급히 요리했다. 제작사 대표나 감독, 주인공들 몫이라 예상했던 달걀 프라이의 주인공은 조명부 스태프들. 이날 촬영 때 조명기구 설치로 가장 고생했다는 것. 아무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밥차만의 특별 서비스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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