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단독인터뷰“‘믿음직하다’한마디,가장큰힘”

입력 2009-03-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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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영국맨체스터서박지성을만나다
“아니 제가 1면에 이렇게 많이 나왔어요?” “최근 3개월치만 가져온 게 이 정도에요. 우리 신문에서 1면을 가장 많이 장식한 스포츠스타가 아마 박 선수일겁니다.” “그래요? 어, 이건 뭐야? 다른 날짜 1면에 같은 사진이 들어가 있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신문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던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농담을 툭 던진다. 조금 전 “맨유의 5관왕 달성에 한 몫을 해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던 한국축구 최고의 스타다운 모습과는 다른 ‘인간미 넘치는’ 표정이다. 스포츠동아가 창간 1주년을 맞이해 영국 현지에서 박지성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18일 오전 훈련을 마치고 캐링턴훈련장 내 인터뷰 룸에 들어선 그는 올 시즌 각오와 평소 신념,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이루고 싶은 꿈 등을 담담하게 풀어놨다. ○맨유 5관왕+ 남아공 월드컵 환희 요즘 영국 축구팬들의 관심사는 과연 맨유가 전대미문의 퀸터플(5관왕)을 달성할 수 있느냐이다. 현재의 페이스라면 못할 것도 없다. 올 시즌 내내 그라운드를 누비며 팀 승리에 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박지성 역시 지금을 맨유 역사의 새 페이지를 열 적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5관왕이 욕심이 납니다. 상당히 좋은 기회죠. 모든 경기에 나설 수는 없겠지만 기회가 되면 가지고 있는 역량은 모두 발휘해보고 싶네요. 모든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정말 중요한 경기에 나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뿐만 아니다. 한국은 현재 2010남아공월드컵에 나서기 위한 대장정을 소화 중이다. 4월1일에는 북한전이 열린다. 대표팀에서 빠져서는 안 될 핵심전력인 박지성의 눈은 이미 남아공을 향해 있다. “월드컵 진출을 낙관하기에는 조금 이르죠. 하지만 승점 차가 크게 나지 않아도 우리는 잘 해왔고 조 1위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남은 4경기에서도 전반기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해야죠. 남아공월드컵에서의 목표요? 어찌 보면 남아공월드컵이 저에게는 마지막 무대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의 최고 성적은 4강이지만 그 때는 한국이었죠. 물론 그것도 대단한 결과지만 독일월드컵에서 거뒀던 ‘원정 1승’을 넘어 이제는 ‘원정 16강’에 오르고 싶네요. 동료들과 내년 남아공에서 그 환희를 느껴봤으면 합니다.” ○“내 삶의 활력소는 최고 구단의 일원이라는 긍지” 2002년 12월,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에 입단하면서 시작된 유럽 생활이 벌써 8년째를 맞고 있지만 박지성은 아직까지도 변변한 관광 한 번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다. 네덜란드에 있을 때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튤립 축제에 다녀온 게 전부. 시즌 내내 리그와 컵 대회, FA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을 치르고 중간 중간 대표팀에 소집되는 등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다보니 사실 관광 다닐 형편이 못 된다. 그래도 8년차인데 이건 너무하다 싶어 물어보니 “조용한 걸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꺼려하는 성격 탓인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365일 늘 긴장된 삶 속에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그를 버티게 해 주는 ‘비타민’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세계 최고 구단에서 뛰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였다. “가끔은 한국도 아닌 외국에 나와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습니다. 활력소요? 그건 생각의 차이가 아닌가 싶네요. 저도 여기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 곳에서 훈련하고 싶어 하는 한국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세계적인 선수들은 또 얼마나 될지’를 생각하면 새삼 감사함을 느끼죠. 저는 그들이 갖지 못한 행복을 누리고 있잖아요. 타국에서 고생하는 것을 뒤덮을 만한 충분한 값어치가 있는 그런 영국 생활이죠.” ○좋은 선수란… 혹자는 “축구는 팀플레이가 중요한 종목이지만 각자 선수들이 이기적이 될 필요도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슈퍼스타들이 죄다 모여 있는 맨유에서는 스스로 뭔가를 계속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하지만 박지성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평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욕심보다 팀 승리가 우선이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온 그의 신념은 변함이 없었다. 박지성은 “물론 골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오늘 어떤 플레이를 했는지, 우리 팀이 승리하는데 무슨 역할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팀이 좋은 경기를 하고 내 플레이가 만족스러우면 공격포인트 등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선수란 무엇인지’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기량보다 앞으로 더 나은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좋은 선수 아닐까요.” ○그가 본 히딩크와 퍼거슨의 공통점 박지성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사령탑으로 히딩크와 퍼거슨을 꼽을 수 있다. 히딩크는 2002한일월드컵 이후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으로 그를 데려가며 유럽 무대에 첫 발을 내딛게 해줬다. 얼마 전 첼시 감독으로 부임하며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해 박지성과 남다른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퍼거슨은 남들이 보지 못한 박지성의 장점을 간파, 세계적인 구단에서 뛸 수 있게끔 기회를 준 은인이다. 최근 7년 사이에 세계적인 명장 둘과 함께 한 박지성은 이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느꼈을까. “두 분 다 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만 평소에는 한 없이 자상해요. 또 선수 장악력과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지니고 있죠. 이런 부분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요.” ○“믿음직한 선배라는 말 듣고 싶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 ‘지치지 않는 산소탱크’, ‘한국축구의 새 시대를 연 주인공’, ‘차범근 이후 한국이 낳은 최고 축구스타’ 등. 박지성의 이름 앞에는 온갖 화려한 수식어가 붙었지만 정작 그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소리는 “믿음직한 선수”라는 말이다. 박지성은 그의 자서전에서 ‘대표팀에 막 발탁됐을 때인 20대 초반 롤 모델은 홍명보 선배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브라질 대표팀 주장이었던 둥가를 높게 평가한다. “둘(홍명보, 둥가) 모두 동료들에게 믿음을 주는 선수죠. 저도 경기장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그런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그런 소리를 좀 많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비단 희망사항에만 그치지 않았다. 박지성은 이미 지난해 대표팀에서 주장 완장을 차면서 ‘조용한 카리스마’라는 독특한 리더십을 발휘해 화제를 낳았다. 정작 자신은 “주장이 된 후 팀의 리더로서 뭔가를 보여주려 하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할 일은 동료들의 요구 사항을 코칭스태프에게 잘 전달해 각자가 가진 모든 기량을 그라운드에서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뿐이다”고 몸을 낮췄지만, 이미 그는 동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캡틴’이다. 맨체스터(영국)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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