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音談패설]한국예술종합대학이성주교수

입력 2009-04-07 09: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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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일평생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30여 곡을 썼다. 이 중 ‘소나타’로 분류될 만한 곡은 20곡. 또 이 중에서 제대로 된 작품번호를 달고 세상에 알려진 곡은 10곡이다. 그러니까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곡이 있는 것이다. 이 10곡의 베토벤 소나타에 상상초월의 도전장을 낸 인물이 있어 화제다. “전곡 연주? 가끔씩 하는 거잖아?” 입이 간지러운 분은 잠시만 참아 주시길. 다음이 중요하다. 전곡을 하. 루. 에 몽땅 연주를 한다. 오후와 저녁으로 나누어 각각 5곡씩. 장장 4시간이 족히 걸리는 대장정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지나가던 베토벤도 기절초풍할 ‘만용’을? 30대 시절 세계를 안방처럼 누볐던 최고의 연주가. 한국에 돌아와선 최고의 명문 음악학교 교수와 실내악 앙상블 ‘조이 오브 스프링스’의 조련사로 자신의 커리어를 덧댄 현 위의 슈퍼우먼. 한국예술종합대학의 이성주(54) 교수다. “글쎄요. 살짝 돌았나? 하하하!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해봐야겠다는 꿈이 있을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 항상 생각은 있었죠. 그러다 작년에 올리버 케른(피아니스트)을 만났는데 베토벤을 다 해봤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이런저런 아이디어로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너무 좋다고 해요. 베토벤의 작품은 피아노 비중이 크거든요. 피아니스트가 ‘예스’ 안 하면 못 하는 프로젝트인데. 오히려 피아니스트가 하라고 등을 떠미니 고맙죠.” - 하루에 전곡을 연주합니다. 지치지 않을까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하루에 연주하는 건 처음이죠(국내 최초 기록이다). 글쎄요. 해봐야 저도 그림이 나올 거 같은데요. 지치긴 지치겠죠? 너무 겁 없이 도전했을까요? 하하, 아닌 거 같은데. 사실 10곡이라면 굉장히 길 것 같지만 아니에요. 오후 공연이 2시간 조금 넘고, 저녁은 2시간이 채 안 돼요. 연습도 4시간은 기본인데 뭐.” - 연주자는 물론 듣는 사람에게도 모험이자 도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죠. 같이 체험해야지. 시간을 내서 미리 음반을 들어보고 연주회장을 찾으면 더욱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리 남편도 요즘 베토벤 열심히 듣고 있어요. 하하!” 베토벤보다 기술적으로 연주하기 어려운 곡은 많다. 그러나 베토벤만큼 음악적으로 연주하기 어려운 곡도 없다. 그래서 베토벤은 젊은 연주자들에게 있어 일종의 금기로 취급받는다. 이 교수 역시 젊어서는 베토벤을 피했다. 요즘 들어서야 베토벤이 부쩍 보인다. 이쯤 됐으니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5월 스메타나 홀에서 프라하 필하모닉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실황음반이 곧 나오게 된다. “베토벤, 아무나 하지? 그거 아니거든요? 심플한 거 같지만 완전히 다 내놔야 하는 음악. 해보면 애들도 알아요. 이게 어렵다는 걸. 악상, 음악라인 같은 게 쉽게 오지 않거든요. 해보고 또 해보고 하면서 긴 시간을 들이다 보면 ‘아, 이게 이거였구나’하는 순간이 오죠. 베토벤은 연주자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좋아지는 ‘특별한’ 음악 같아요.” - 요즘은 오디오도 음반도 참 좋아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꼭 공연장을 찾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음반은 다 만들어낸 거잖아요. 실제 무대하고는 다르죠. 연주자를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음악세상을 보는 거죠.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 사람이 풍기는 ‘뭔가’는 CD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죠. 그리고 생음악이 좋지 않아요? 가끔 실수도 나오고. 사람 냄새가 나잖아요. (틀릴 땐 어떻게 하시죠?) 넘어가야지 뭐. 흐흐” 이성주 교수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중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표현이다. 어느 날 신문에서 처음‘중견’운운을 보고 “내가 왜 중견이야!”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르치는 일도 좋지만 연주활동과 음반작업도 분발해야겠다 싶었다. 이 교수는 스스로 ‘10년 단위 인생’을 살았다. 20대에 공부, 30대에 연주자로서 절정의 시기를 보냈고, 40대 이후는 제자를 기르는 일에 전념했다. 앞으로의 10년은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번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는 그 미지의 10년에 대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중대한 실험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4월 19일(일) 오후3시, 7시30분|금호아트홀|문의 02-780-5054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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