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音談패설]당당히‘전업’선언작곡가강은수

입력 2009-04-13 21: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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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표…구준표말고티켓이요!”
“꽃보다 표에요.” “네? 아, 꽃남팬이시군요. 꽃보다 구준표.” “그게 아니고요. 꽃보다 표. 티켓!” 강은수(49) 씨의 눈이 안경 너머로 빛난다. 무슨 얘기인지 알 것도 같다. “음악회 표를 사면 나만 손해 보는 거 같죠? 연주자와 친분이 있는데 표를 안 주면 섭섭하죠? 남들은 그냥 오는데 왜 나만 돈을 내나 싶죠? 공연 오시는 분들이 꽃을 많이 가져다주세요. 좋긴 하지만 이걸 어떻게 다 가져가나 걱정부터 앞서요. 꽃다발보다는 한 장이라도 표를 사 주세 요. 그것이 진정 우리를 위하는 길이죠.” 서울대 음대와 독일 뒤셀도르프 음대를 졸업한 작곡가 강은수 씨는 귀국 후 강의와 작곡을 병행하다 마흔 나이에 국내에서는 결코 흔치 않은 ‘전업 작곡가’를 선언했다. 그리고 4년 뒤, 아이들과 함께 다시 독일로 떠났다. 2007년 브레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다시 귀국. 전업 작곡가로서 제2기 인생을 맞이하고 있다. 2008년에는 서울스프링페스티벌 위촉 작곡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사논문이었던 재독 작곡가 박영희에 관한 논문이 곧 책으로 묶여 나온다. - 40대의 나이에,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전업 작곡가로 나선다는 건 굉장한 모험이 아닙니까? “1986년에 귀국해서 강사로 많이 뛰었죠. 거의 매일 다른 학교에서 강의를 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었죠. 애들 키우랴 강의하랴, 결국 작곡이 늘 처지는 거예요. 이대로 손이 굳어버릴까 걱정도 되고. 어차피 나 아니더라도 강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줄 을 섰잖아요. 그래서 결심을 했죠. 육아하고 작곡만 빼고 다 접자!” - 작품을 쓰는 스타일은 어느 쪽일까요? 일필휘지인 모차르트 형과 퇴고를 거듭하는 베토벤 형이 있지요? “100퍼센트 모차르트 형이죠. 7월에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 공연 중 미사곡이 있어요. 화요일 연습 때마다 가서 듣는데 이걸 내가 어떻게 썼나 싶어요. ‘영감’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죠. 사실 처음 작곡 배울 때 선생님들한테 ‘작곡은 영감이 아닌 테크닉으로 쓰는 거다’라고 배웠죠. 학구적이고 구조적인 훈련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한 30년 하다 보니 지금 와서는 제일 중요한 게 ‘영감’이라는 거죠. 머리로 쓰다가 완전히 가슴으로 쓰게 된 거예요.” - 기사를 쓰다 보면 기자들도 처음과 끝이 가장 어렵습니다. 작곡도 그럴까요? “그럼요. 제가 박영희 선생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잖아요? 그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처음 곡을 쓸 때면 늘 어마어마한 두려움으로 시작을 한다. 첫 음을 쓰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일단 처음에 타악기를 ‘꽝’ 때려놓고, 그 속에 숨어서 쓴다. 이해가 가시나요? 하하” - 평소 ‘창작 쿼터제’를 주장하시고 계시지요? “거의 10년은 된 것 같아요. 요즘엔 그래도 많이 정착됐죠. 공연을 할 때 프로그램에 창작곡을 많이 넣고 있어요. 외국 오케스트라가 올 때도 우리나라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물론 우리가 외국 나갈 때는 반드시 우리 곡도 들고 나가야 하고 요. 이게 기본이고 에티켓이 아닐까요?” - 한국에서 작곡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가요? “연주자들도 매한가지이긴 하지만 정말 힘들죠. 은퇴한 은사님들을 뵈면 앞날이 깜깜해요. 무대 없죠? 위촉도 없죠? 작곡은 제대로 훈련을 받으려면 아무리 짧아도 10년이에요. 창의성, 끈기 다 필요하고요. 음악계로선 ‘보배’로 취급해도 시원치 않을 정도죠. 늘 회의가 들어요. 내가 전업이 맞긴 맞나. 수입이 없는데. 동료들이 ‘너는 돈 보고 작곡하냐?’할 때면 속이 타요.” 강은수 씨는 4월 22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즐거운 편지’를 주제로 공연을 갖는다. 유학 시절 입에 달고 살았던 황동규 시인의 작품 ‘시월’을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연가곡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바리톤과 호른, 트럼펫을 위한 ‘풍장(2002)’, 아코디언 독주를 위한 ‘녹차에 하얀 매화 (2005)’, 메조소프라노와 아코디언을 위한 ‘봄날에(2007)’ 등이 차례로 선보인다. 가야금 이지영, 클라리넷 계희정, 마림바 김미연 등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이 강은수 씨의 곡을 연주한다. 지휘는 파리 누벨 제네라시옹 앙상블의 음악감독 박지용이 맡는다. “공연을 보러 오신 관객 분들이 뭔가 하나라도 담고 가야 한다는 데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철이 들었나 봐요, 하하. 이번 공연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즐거웠으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양형모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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