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의사커에세이]에이전트가선수를보는눈

입력 2009-06-0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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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구설과 튀는 어록으로 유명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긴 말 가운데 그래도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것이다.

인재를 어떻게 발굴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조직이나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의미일 텐데, 사람(선수)이 유일한 재산이자 재산권인 에이전트의 입장에선 그만큼 딱 떨어진 표현도 없다.

바꿔 말해 어떤 선수와 인연을 맺느냐 하는 것이 결국 조직(회사)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런데 문제는 ‘제대로 된 선수’를 찾기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아니, 선수가 없다기 보다는 선수를 보는 안목을 갖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사람처럼 복잡다단하고 분석이 힘든 존재는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에이전트가 선수를 보는 눈은 일선 지도자와는 달라야 한다고 본다.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는지, 기술적으로 성장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래도 축구인들이 더 잘 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진짜 ‘블루칩’을 찾는데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진짜배기인지, 아니면 무늬만 화려한 빈 수레인지를 보려면 선수의 ‘가슴’을 열어보아야 한다. 거기에 ‘성공의 키워드’가 들어있다.

그건 선수의 야망, 그것의 순수성,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내공’이다. 총체적으로 말해서 ‘인성’이란 말로 포괄할 수 있겠다. 야망을 키우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만, 제대로 된 야망이어야 한다. 잉글랜드 리버풀의 제라드처럼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가 되겠다는 것은 훌륭한 야망이지만, 어린 시절 한이 맺혔던 돈을 억수로 벌어보겠다는 꿈은 뒤틀린 야망이다.

고가의 스포츠카를 타고 미모의 탤런트와 연애를 해보겠다는 것은 더 저급한 야망이다. 그 꿈이 성취되는 순간 선수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더 이상의 성취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내공’이란 숱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의 힘이다. 축구화를 벗고 싶은 상황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는 힘,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 목표를 위해서라면 편하고 쉬운 길 보다는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는 도전정신 등이 그것이다.

박지성, 이영표를 보라. 그럼 도대체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한 가지만 꼽으라면 ‘내 탓’을 하는지, 아니면 ‘남의 탓’을 하는지 보면 된다. 경기에 계속해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 치자.

전자는 ‘내가 아직 부족해서…’라며 부진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는 반면, 후자는 곧바로 피해의식에 호소한다. ‘감독에게 찍혀서’ ‘○○○는 감독의 아들이라더라’ 등의 루머를 사실인양 치부하며 자신의 무능을 억울한 희생양으로 둔갑시킨다. 전자는 자신을 더 채찍질하며 때를 기다리지만, 후자는 불만에 불만을 덧씌우며 눈덩이처럼 키운다.

에이전트로서 ‘내 탓’을 하는 선수를 만나는 건 행운이다. 이런 선수는 관리도 쉽다. 어떻게든 도와주고픈 마음도 생긴다.

결과 역시 대체로 좋다. 반대로 ‘남의 탓’에 젖은 선수는 떠올리기만 해도 괴롭다. 실력에 비해 기대치만 높은 경우가 많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회사로서도 전력누수가 심각하다. 이 쯤 되면 해당 선수에 대한 인사(人事)는 이미 ‘망사(亡事)’가 돼버린 시점이다.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에이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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