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내가최고다’주문을외웠죠”허정무호기대주이·승·현

입력 2009-08-14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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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현.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이승현 프로필 ○생년월일:1985년 7월 25일 ○신장:176cm ○몸무게:69kg ○포지션:미드필더 ○출신교:대구 반야월초-청구중-청구고-한양대-2005년 부산 아이파크 입단 K리그 92경기 14골 5도움 ○대표 경력 2005년 U-20 청소년 대표 2008년 올림픽 대표 ○A매치 데뷔 : 2009년 8월 12일 파라과이전

3일 오전, 성희경(48)씨는 파마를 하기 위해 미용실에 들렀다가 에이전트에게 “아들 (이)승현이가 대표팀에 발탁됐다”는 말을 들었다.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지만 아들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이승현(24·부산 아이파크)은 오랜만의 휴가에 휴대폰도 꺼 놓은 채 늦잠을 자는 중이었다. 파마를 하는 둥 마는 둥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승현아, 일어나.” “왜, 아침 먹으라고?” “너 대표팀에 뽑혔어.” 이승현은 귀를 의심했다. “엄마, 장난이지?” “컴퓨터 켜 봐.” 조심스레 검색해 본 대표팀 명단에 ‘이승현’ 이름 석자가 당당히 들어 있었다.

○교체 3명 아니에요?=12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 경기 전 “고루 기회를 주겠다”고 공언한 허정무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박주영, 강민수, 조원희를 한꺼번에 투입했다. 이승현은 그 때까지 교체인원이 3명인 줄 알았다. ‘그래, 좋은 경험이었어.’ 마음을 비우려는 순간, 누군가가 옆에서 “오늘은 교체가 6명이다”고 일러줬다. 후반 24분, 교체명단에 그의 이름이 떴다. ‘그래, 자신 있게 한 번 해보자.’ 이승현은 염기훈과 교체돼 꿈에 그리던 A매치 그라운드를 밟았다. K리그에서 제주 원정을 빼놓고는 매 경기 아들 경기를 직접 본 열성 부모도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감격적인 데뷔전을 지켜봤다.

○내가 최고다=“교체돼 들어가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4년 전, U-20 청소년대표팀에 뽑혀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서 나섰을 때는 모든 것이 아득했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내가 최고다’는 주문을 외며 들어서자 머릿속은 더 명료해졌다. 후반 38분, 기성용이 볼을 잡는 순간 왼쪽 공간이 비어 보였다. ‘여기로 침투하면 찬스가 나겠는데.’ 거짓말처럼 기성용의 패스가 배달됐다. ‘땅볼로 때려보자. 아웃 아니면 코너킥이 되겠지.’ 이승현의 왼발을 떠난 볼은 상대 골키퍼 손에 맞고 문전 중앙으로 향했고 박주영이 이를 받아 오른발 슛. 결승골이었다. 둘의 합작이 허정무호를 구해낸 셈이다. 초·중·고 동창생으로 절친한 박주영이 입을 열었다. “(이)승현이, 역시 빨라.”

○다시 만난 삼총사=이승현은 대구 반야월초 시절 반 대항 경기에서 발이 빠른 게 감독의 눈에 띄어 축구화를 신었다. 청구고는 박주영과 이승현이 3학년이 되던 해 거칠 게 없었다. 이승현도 각종 대회에서 5-6골을 넣는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당시는 ‘떴다 하면 밥 먹듯이 골을 터뜨린’ 박주영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경쟁의식은 없었어요. 포지션도 달랐고…. 진 기억도 거의 없고 참 재밌게 축구했어요.” 당시 부평고의 ‘에이스’였던 동갑내기 이근호(주빌로 이와타)와 한 번도 맞대결하지 않은 것도 신기한 일. 셋은 이번에 허정무호에서 다시 만났고, 박주영과 이근호는 이승현의 대표팀 적응에 큰 힘이 돼 줬다.

○축구로 100점 아들 되고파=이승현은 늘 밝은 표정의 낙천적인 경상도 사나이다. 13일 오전 인터뷰를 위해 이른 시간에 김포공항에 도착해서도 싫은 기색 하나 없었다. 이승현과 박주영은 청구고 동창 모임인 ‘ASK’ 회원인데, 둘 모두 휴가 때 고향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떠는 것을 즐긴다고. 그런 이승현이 크게 독기를 품은 적이 있다. 2007년 4월, 무릎부상을 당하고 눈물겨운 재활 끝에 그 해 말 복귀했지만 컨디션은 영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다음 해 꿈에 그리던 베이징올림픽 출전이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쓴 경험은 약이 돼 돌아왔다. 지난 해 K리그 19경기에 나서는 데 그쳤지만 올해는 벌써 19경기에 4골 1도움을 올리며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제가 매주 경기가 있어 부모님께 아들 노릇 60점 밖에 못 하잖아요. 축구로나마 100점짜리 아들이 되고 싶어요.”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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